그동안의 고충은 오늘을 위해 존재했던 게 분명했다.
부동산이 다른 재화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물고 물린다는 것이다. 내 집이 팔려야 다른 집을 구하고, 새 집을 사면 원래 주인도 또 다른 거처를 구해야 한다. 전세 매물을 수십개씩 보유하고 있다가 세입자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죽어버린 이른바 ‘빌라왕’의 사건부터 연쇄적으로 빌라 전세사기 사건이 이어진 것은 같은 이치다. 우리는 대출을 받았지만 우리의 첫 아파트를 사기로 한 젠틀한 부부가 대출을 못 받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면 상황이 어떻게 꼬이게 될 것인가. 상상하기도 싫었다.
대출을 받는 데 성공했음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와중에 나는 둘째를 낳았다. 모든 게 처음이라 혼란스럽던 첫째 때와는 달리, 이미 경험이 있었던 덕분에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뤄졌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열흘 만에 돌아온 우리의 첫 아파트는 아기들의 물건 덕분에 문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첫째를 낳은 뒤에는 모든 방들이 각각의 기능을 잃은 것 같았는데, 둘째를 낳고 나니 이 집은 그냥 22평짜리 창고가 돼 버렸다. 거실에도 아기 옷장이 있었고 작은 방에도 아기 옷장이 있었으며 제일 안쪽의 방에도 아기 옷장이 있었다. 내 잠자리는 거실에 있었지만 화장대는 서재에 있고 옷들은 안방에 있었으며 양말은 취미방에 있었다. 베란다엔 유모차와 아기 자전거, 보행기, 실내에서 타고 다니는 장난감 자동차 등이 산만하게 쌓였고 바닥에는 아직 뜯지 않은 샴푸와 바디워시들이 줄지어 섰다. 그야말로 중구난방 엉망진창이었다.
만약 매수인의 대출이 막혀 이 집을 떠날 수 없게 되면 그 때는 어쩌지? 그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왔다. 아기가 둘이 되자 22평의 집은 지옥이 됐다. 정리정돈이라는 것을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으로 가득 차 버렸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우울한 그림이었다.
출산 후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수인 쪽 부동산이었다. 혹시나 대출 문제일까 싶어 쿵 하고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요즘 대출이 안 나오잖아요…”
제발. 설마. 짧은 순간에 온갖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가장 최악의 일이 현실로 닥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소장이 전한 말은 다행히도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매도인 분들이 단독명의로 계약서 쓰셨는데, 대출 문제 때문에 공동명의로 바꾸셔야 할 것 같대요. 계약서 그 부분만 수정해서 진행하는 거 괜찮을까요?”
괜찮을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지금 와서 계약서를 수정하면 우리가 겨우겨우 막차를 타서 받아낸 대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 가도록 은행 직원을 붙잡고 진행한 대출인데, 수정이라는 게 가능한 영역인가? 부동산 소장은 괜찮을 거라고 했다. 요즘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소장의 말대로 은행에서도 큰 문제는 없다는 답변을 줬다. 그제서야 명치 끝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고객님.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말에 웃으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끊고 난 뒤 신랑에게 카톡을 보내는 내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잠시 사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몸을 훑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출이 나오지 않았거나 매수인 쪽 대출이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내 몸이 느꼈을 스트레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을 것이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일은 또 있었다. 9억이 넘어가는 집값으로 신생아 대출은 아예 대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아기가 태어난 덕분에 취득세 550만원을 감면받은 것이다. 1억, 2억을 논하는 집값에서 550만원이라고 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이 들리지만,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직장인 중위 소득 실수령액이 230만원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돈이다. 앉아서 550만원을 번 기분이었다.
부동산 거래를 하기 전에는 집값만 보고도 한숨을 쉬는 경우가 많은데, 집값과 인테리어 비용을 제해도 여러 부대 비용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각종 세금과 복비가 나가니까. 대출을 받기 전 계산을 잘 해야 할 부분이다. 다행히 우리는 빠듯하지 않게 준비했는데, 여기에 취득세까지 아끼게 되니 괜히 앉아서 돈을 번 느낌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당연히 원래 그래야만 했단 듯이 차근히, 또 차분히 이뤄졌다. 양해를 구해 우리가 사기로 한 집을 방문해 인테리어를 위한 실측을 했다. 다시 보니 처음 왔을 땐 보지 못했던 곳이 보였다. 낡은 곳, 지저분한 곳, 설치가 제대로 안 된 곳, 불편할 만한 곳, 활용도가 낮은 곳. 그러나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손으로 다 고쳐서 새롭게 바꾸면 될 테니까. 이제는 그저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을 벗어나 침실과 서재, 옷방, 아기들 방을 따로 쓸 수 있었다. 집 다운 집을 꾸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삿짐 센터, 샷시, 수도, 화장실과 타일, 몰딩과 걸레받이, 조명과 전기, 문과 문틀, 중문, 신발장, 도배와 장판, 그리고 입주청소까지. 하나하나 업체를 고르고 어떤 집을 만들어 나갈 지 협의를 시작했다. 다행히 2020년부터 이어진 다년간의 이사 스킬 덕분에 어렵지 않게 좋은 사장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어머니의 감에 따른 것이었지만. 우리의 첫 아파트를 인테리어 할 때 그랬듯,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인테리어 업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무궁한 열정을 발휘해 주었다. 만약 내가 시어머니를 믿지 못했다면 갈등 요인이 될 만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시어머니의 정보력과 안목을 믿었다. 덕분에 5천만원 이상 든다는 인테리어 비용을 2천만원대로 대폭 낮출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시어머니의 노고가 엄청나게 들어갔지만 말이다.
잔금을 치르는 D데이, 모든 일은 놀랄 만큼 스무스하게 이뤄졌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들어와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한가득 꽂혀 있던 책도, 반듯하게 벽에 걸려 있던 텔레비전도,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던 아기 장난감도, 아우터부터 양말까지 어느 하나 한 곳에 모여 있지 못하던 옷들도 모두 가차없이 커다란 박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토록 좁았던 집에 차츰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란다 밖으로는 이 집의 전매특허였던 탁 트인 뷰가 내려다보였다. 아주 추운 날에도 언덕을 오르고 나면 살짝 땀이 날 정도로 험준한 22평짜리 아파트였지만, 이 풍경은 모든 고충을 상쇄했다. 나와 신랑이 우리의 힘으로 직접 샀던 이 뷰는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두 아이를 갖게 되고 또 낳아 기른 우리의 첫 집. 소중한 추억이 많은 감사한 집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그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와 신랑은 마지막으로 집의 모습을 눈에 담고 문을 닫았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보다 윤택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빚의 무게가 커 예전만큼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할 것이었다. 서울 시내 뉴타운의 40평대 브랜드 아파트에 자가로 사는 사람들이 됐으니까.
평지인 아파트 입구에는 엄마와 어린 아이, 그리고 여유롭게 산책 중인 할머니가 가득했다.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고 바로 뒤편에는 요아정을 새로 짓고 있었다. 1분 거리에 유치원이, 5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고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었다. 1234#로 설정해 둔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열렸다. 아무 것도 없이, 드넓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제부터 이 곳이 우리의 새 집이었다.
22평의 딱 두 배가 되는 공간을 어떻게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새로운 집에서 나와 신랑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만들며 살아갈까?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고충은 오늘을 위해 존재했던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