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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라 Jan 21. 2023

중증 장애인 동생과 시골 내려가기

우리의 귀성길

설이다. 투닥투닥 술 먹다 말싸움이 붙고, 도란도란 앉아 전을 부치니 예전 명절이 생각난다.


동생(*애칭 : 쭈니)지금보다 훨씬 조그맣던 시절, 명절에 시골로 내려가던 때 이야기다. 그 당시 아빠 차는 구형 싼타페였는데, 그 차는 뒷좌석을 접어 눕힐 수 있었다. 그래서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하고 모든 좌석을 눕혀 침대처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동생을 눕히고, 엄마와 나도 앉았다가 눕다가 하며 몇 시간을 달려갔다.


동생이 누워서 갈 수 있으니 나마 마음이 놓였다. 중간에 기저귀를 갈기 편했고, 차 안에서 안아 들고 뭘 먹이기도 수월했다. 하지만 나는 차의 모습만 사진처럼 기억나고, 그 안에서 엄마가 동생을 어떻게 안았는지, 동생이 정말 편안했는지 하나도 답할 수 없을 만큼 희미하다. 생각해 보면 "엄마 그걸 어떻게 했지?"라는 말밖에 오르지 않는다.


기억 있는 엄마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동생과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는 시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6~7시간 정도가 평균이고, 막힐 때는 최대 9시간이 걸렸다.


휴게소는 얼마나 들렀고, 기저귀나 먹이는 건 어떻게 해결했나요?
휴게소는 두 번 정도(식사와 화장실) 갔고, 쭈니는 그때마다 차 안에서 기저귀를 갈고 먹였다.


동생과 명절에 시골에 갈 때 가장 걱정되는 건 무엇이었나요?
병 증세로 무호흡증 경기를 해서 종합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고향집과 멀어서 걱정이었다.


아픈 아이와 장기간 이동할 때 필수품이 있다면요?
쭈니는 특이한 경우인데, 무호흡증 경기 때문에 항경련제(디아제팜) 주사약과 주사도구들이 필요하다. 급할 땐 항문으로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집이 큰집이 되어 이동할 필요 없이 집에서 명절을 보냅니다.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쭈니가 차를 타고 힘들게 오랫동안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짐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다.


그럼 반대로 나쁜 점은요?
나쁜 점은 거의 없고, 아쉬운 점은 나름 그 고향길이 우리 가족 여행도 겸해서 가는 것이었는데, 그게 사라져서 아쉽고 고향을 못 가본다는 것도 아쉽다. 또, 친인척들을 두루두루 못 본다는 것이 나쁘다면 나쁜 점이다.


지금 다시 동생을 데리고 시골에 내려가라면 갈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갈 수 있고, 더 잼나게 여행 계획까지 세워서 천천히 가족들과 즐겁게 갔다 오고 싶다.


마지막 질문에 당연히 가겠다는 엄마의 답이 놀랍다. 내 생각과 달리 엄마에게는 고행길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꼬박 10년을 다녔다. 2015년부터 우리 가족은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일을 어떻게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기억은 대부분 먹는 것에 집중돼 있다. 휴게소에 들르면 알감자, 소시지, 핫바 등등을 사서 나눠 먹었다. 엄마가 기저귀를 갈 때 누군가 보지 않도록 앞에 서 있었고, 엄마 입에 알감자를 하나씩 넣어주었다.

나는 행복했다. 집을 떠나 어디로 가는 그 자체가 좋았고, 시골에 가면 만날 사촌들이 보고 싶었다. 받아오는 용돈도 좋고, 동생 몫을 챙겨주시면 쪼로로 엄마에게 달려가 "이거 쭈니 거!"라고 외쳤다. 가끔 나보고 가지라고 하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부모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행복하기만 한 추억은 아닐 테다. 새벽 캄캄한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서 교대 한 번 없이 운전하는 아빠와, 동생을 눕혔다 안았다 잠들지 못한 채로 시골에 가서 음식 하면서 동생도 돌봐야 하는 엄마. 차라리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아빠는 장남이었고 엄마도 시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셨기에 우리는 시골로 갔다. 많은 을 무릅쓰고도 갔다.

지금은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게 참 고맙다. 우리가 배려를 받아 서울에만 있었다면 나는 아궁이에 불 피우는 법 몰랐을 거고, 불편한 화장실이라고 불평하거나 맛있는 홍시 따먹어볼 수 없었을 테다. 생과 함께하는 여행의 기회도 놓쳤을 거다.


상황에 처했든 자기 할 도리를 다 하는 부모님께 배운다. 힘들어 보이는 일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라 즐겁 말이다.


여러분의 설은 어떤지 궁금하다. 다들 자기만의 루틴이 있을 것 같다. 그 패턴에 지루함을 느끼시는지, 익숙한 명절 풍경이 반가우신지. 어느 편이든 행복한 순간을 찾아 두루뭉술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다들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언제나 댓글 남겨주세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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