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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몰입 2022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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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30. 2022

나이 한 살에 만 원씩 쓸 자유

나의 가방 장만기

 “이 디자인이 나을까, 아니면 이게 나을까?”

어느 날 짝꿍이 내게 쇼핑을 묻는다.     

 “팔찌 사려고? (그를 힐끔 쳐다보며) 근데 이건 물에 닿으면 부품이 금방 떨어지지 않을까?  

 샤워할 때도 계속 몸에 차고 있을거야?”

 “응.. 하, 거참, 고민되네. 근데 얘가 좀 더 값이 싸.”     


장바구니에 담아 둔 액세서리를 이것저것 보여준다. 평소 쇼핑 좀 해본 내게는 탐탁치 않은 디자인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의 취향을 한껏 반영한 제품이 보란 듯 화면에 나온다. 유사 브랜드가 두엇 나온다. 좁혀진 품목이 구매에 점차 가까워진 것 같다. 다만 이것이 팔찌냐, 목걸이냐의 결정 사항만 남았다. 명품에 속하는 브랜드 중 액세서리 품목은 온라인에서 쉽게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 가방이나 옷과 달리 액세서리류는 대다수가 시즌오프 제품인데 명품 치고는 가격이 65% 이상 저렴하다. 안경, 팔찌, 목걸이, 귀걸이와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한다. 브랜드도 해마다 시즌을 오가기 때문에 선호하는 브랜드를 정하면 그만이다. 그가 고른 브랜드는 아르마니와 폴스미스 사이.     


 “아르마니 팔찌가 더 마음에 드는데 폴스미스 디자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가 제법 알뜰살뜰 쇼핑의 흉내를 내며 결재 의지를 내비친다. 디자인과 천원 단위의 가격대를 따져가며 살피는 모습이 일원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바람직한 자세를 취한다. 정말 사려고 그러나?     


자칭 타칭 소금장수, 짠돌이, 자반구이를 일컫는 그가 팔찌를 사기 위해 사이트를 뒤지다니. 돈에 있어 쓰는 것에 재주를 발휘하는 나와는 달리 모으는 것에 익숙한 짝꿍의 구매는 흔치 않아 어색하다. ‘그런 그가 쇼핑을 한다’는 것은 세 가지 현상으로 분석된다. 하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중이다. 둘, 반대로 살림이 극에 치달아 이거 하나라도 건져야 뭐라도 남을 것 같아 돈이라도 써본다. 셋, 불안 심리가 애착으로 자가 발전해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을 한다. 미루어 짐작컨데 1번과 3번의 이유로 추리된다.      


언젠가 지인과 쇼핑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나는 뜬금없는 고백을 했다.

 “나 결혼식 이후 10년 동안 한 번도 명품을 산 적이 없어.”라고 말하자, 

 “너 정말 착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혀 이해 안되는 얼굴로)어???”     


 생각지도 못한 칭찬이었다.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의아했다. 다들 그렇게 명품은 살면서 손에 꼽아가며 몇 번 사는 게 아니라 장만한다는 술잔에 담아 풀며 사는 것이 아니었던가. 마트에서 늘 사던 돼지고기에 오늘의 기분 값을 얹어 소고기를 사볼까 쉽게 가격을 흥정하는 품목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랬다.      


 문득, 우리가 명품코너를 기웃거렸던 때가 떠올랐다. 한창 결혼 준비로 분주하던 시기. 그는 시계, 나는 반지에 한껏 의미를 새겨 넣었다. 각자가 고른 ‘중요하다’고 꼽은 웨딩템이었다. 왠지 이 아이템을 지니면 ‘우리는 솔드아웃’이라는 스테이지 뱃지를 기쁘게 받아 들고 다음 단계로 성큼 올라설 것만 같았다. 당시 어머님이 주신 신부 비용 중 백(bag)머니를 살림 장만에 보탰다. 가방이 딱히 없는 것도 아니니 ‘다른 품목에 양보할 수밖에’라고 스스로에게 둘러댔다. 그 이후로 매년 아이들 옷을 사거나 물건을 살 때가 생기면 좋아하는 디자인의 가방에 하트를 눌렀다.      


 식구가 늘어가면서 필수품과 아닌 것의 기로에서 늘 고민한다. 그리고 필수품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특히 아이들 물건에는 필수가 아닌 것에도 비용을 지불하는데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 내 물건을 사는 일에는 유독 인색해진다. 가사 소비에도 필수라는 이유보다 앞서게 되는 구성원의 우선 구매 품목이 생긴다. 포켓몬 카드라던가 팽이처럼 당장 필요 없는, 어쩌면 배송 온 당일 망가지고 찢겨질 일회용품이라도 지갑이 열리는 대환장의 구매 현장.     


 ‘네 입만 입이냐, 엄마도 소고기 먹을 줄 알아! 자라면서 생선 머리는 먹어본 적도 없어. 엄마도 사탕보다 초컬릿이 더 좋아!’     


세 아이를 돌보면서 그렇게 나는 내가 챙겼다. 그래야 친정엄마가 마음 담아 곱게 키운 딸이 결혼해서도 엄마처럼 살신성인으로 살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믿음에 보답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아이가 커 가면서 온몸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포착할 때면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커 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받는 것보다 주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주는 것을 더 좋아했던 나조차도 쉴새없이 아이에게 퍼주는 상황은 마음을 지치게한다. 주는 행태가 습관처럼 누적된 세월에 항복된 것일까. 언제부턴가 본인에게 쓸 비용을 아껴서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읽히기 시작했다. 젠장! 연애를 할 때도 한 쪽에 올인하는 것은 감정 평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고 그토록 자를 굴려대며 이리재고 저리쟀는데. 자식이뭐라고! 


소위 ‘그게 부모 마음이야’에 낚인 뒤로는 모든 것이 눈물이었다. 부모님에게 받았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좋은 모습으로, 때로는 서럽게 가공된 기억이라 할지라도 기저에 깔린 사랑을 외면할 수 없었으니까.         

 

우리는 도대체 매달 얼마나 벌고 써야 만족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만족하는 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렇다면 내 나이에 맞는 소비 금액은 얼마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 나이에 값을 매긴다면 매달 얼마가 적정선일까. 나이 한 살에 만원이면 되려나. 최저임금도 시급 9천원이 넘는 세상인데 만원 정도는 해야 시장을 반영한 가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한 살 먹기 위해 12개월을 사는데 너무 후려친 가격은 아닐까. 나이 한 살에 만원을 얹어 매월 42만원을 나를 위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계산법으로 산다면 90살이 넘었을 때 매달 90만원을 오롯이 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만족에 가까운 씀씀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내 기준이 너무 소박한가? 단편적인 프로세스를 돌려보더라도 이루기 어려운 바람이다. 아흔 살이 넘도록 생계를 위한 노동능력이 내게 남아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달 내 나이와 같은 금액을 오롯이 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바램이 너무 진심처럼 느껴져서 므흣한 미소가 어이없이 번진다.      

    

어느새 6개월 뒤면 결혼 10주년이 된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매번 먹던 반찬에 고기반찬과 이따금 출연하는 케이크를 후식으로 꺼내오면 그것이 기념일인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때로는 배달음식으로 남이 해주는 한 끼를 즐기기도 하면서. ‘어차피 한 주머니’에서 나오는 선물이기에 불필요한 비용이라고 아꼈다. 선물이라 할만한 것은 결혼 4년 차에 받았던 노트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가방을 장만할 때가 왔다는 확신과 결재의 용기가 생겼다. 언제까지 가방에 하트만 누르면서 ‘못 다한 아쉬움과 미련’으로 간직할 것인가.     


결혼 1년에 12만원이라는 수고비를 책정해 120만원의 예산을 정했다. 그간 하트를 날렸던 무수한 가방 중 한 시즌 뒤로 무난한 디자인의 세일 상품을 위시리스트에서 장바구니로 이동 시켰다. 그리고 10년 동안 썸을 탔으니 이제는 청산하고 ‘하나쯤 장만해도 된다’는 소비자의 야무진 구매 사유를 두둑하게 얹는다. 결국 장바구니에 넣고도 결재 버튼을 클릭하기까지 두 달을 고민했다. “언니.. 그만 좀 물어보고 이제는 좀.. 사라.”는 동생의 음성 확인을 체크하고 나서야 결재 비번을 누른다. 할부 7개월. 결재 시 7개월 이후부터는 이자가 붙는다는 문구에 늘릴 수 있는 최대의 분할 결제였다. 주부 계산법으로 월 만원이라는 막대한 할인가를 적용해 10년 만에 정말로 새 명품가방을 장만했다.      


가방은 하루 만에 도착했다. 명품도 온라인으로 쉽게 사는 세상이라니. 고가 제품은 직접 가서 보고 만지지 않으면 지갑조차 열지 않았는데. 물론 이 가방을 한 번도 실물을 보지 않고 구매한 건 아니다. 디자인이 출시된 해에 우연히 백화점을 지나면서 직접 보러 간 적이 있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눈으로 만지작 시선만 옮겼다.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려 보거나 너무 인기가 많아서 단종된 디자인이 있는 제품도 아니다. 그러나 손으로 직접 만져보면 마음이 더 커질까 매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5년 만에 정말로 손에 쥐게 된 가방은 B사 제품이다. 그간 자주 쓰는 가방의 용도와 목적, 크기를 고려해 특이할 것 하나 없는 무난한 디자인에 컬러까지 블랙이다. 사실, 대학교 3학년 때 샀던 F사의 블랙 가방 손잡이가 닳아 손잡이가 온전한 가방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가방은 구매 후 몇 달 바짝 지친 마음에 설렘을 안겨 줬다. 고단한 육아 이후에는 옷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욱이 ‘짝꿍은 모르는 일’이라는 네임텍이 붙은 비밀이었으니. 또, 매달 벌어도 바람같이 스치고 사라지는 급여 통장에 가방이라는 실물의 인질을 붙잡아 놓았달까.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낮에만 빛을 보는 인질은 오랜 시간 지켜본 의미를 갖게 했다. 질리지 않았으니까. 직접 갖고 다닌 건 며칠 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둘러본 효과일까. 원래부터 있던 가방처럼 익숙한 존재가 됐다.


남편에게 협찬받고 싶지 않은, 풀이하면 사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싶지 않았던 소비. 다만, 안타까운 일은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무게에 집중하게 됐고 ‘그래, 가죽가방은 마냥 가볍지는 않아’라는 구매 후기를 남기게 됐다는 것. 이따금 ‘아끼면 똥 된다’는 만고진리를 일깨우기 위해 가방이 세상 빛을 보는 날을 오가며. 손잡이가 탄탄한 나의 B사 블랙가방은 ‘여전히 그가 모를 일’이라는 희미해진 확신으로 얌전한 인질의 모습을 뽐내며 옷장 한 켠에 놓여 있다. 다음 외출을 고대하며. 블랙의 자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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