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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zip May 30. 2022

배려가 만든 생명의 기적, 박새가 찾아왔다


“짹짹짹짹.”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귀를 기울여본다. 공사장에 있을 법한 기구 안쪽에서 퍼지는 소리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그 작은 틈에선 아파트 주민들의 배려 속에 ‘생명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ㅣ미묘한 새소리의 정체ㅣ

경기도 성남시의 한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오가는 입구 주변에서 새소리가 꾸준하게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에 새가 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리가 미묘했다. 여러 마리가 내부에서 줄기차게 지저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장에서 다룰 것 같은 기자재의 안쪽에서 어미새와 새끼새 6마리가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며 귀를 쫑긋하게 했다.


ㅣ언제 어떻게 들어갔을까ㅣ

궁금증을 자극하는 점은 새들이 언제 어떻게 들어갔을까였다. 아파트 경비원에 따르면 5월 초에 발견됐다. 그는 “누가 일부러 넣진 않았고 자연적으로 새가 들어가 알을 품어 부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미새가 밖에서 먹이를 구해 물어다 주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았다”고 말했다. 새가 들어간 이 기구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소유물로 공사할 때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이 기구에 있는 작은 틈에 들어가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ㅣ아파트 주민의 작은 배려ㅣ

아파트 출입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기 때문에 새가 탄생하기에 적합하진 않다. 필요에 따라 기구를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새들이 거주하는 기구에서 하나의 메모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엔 “<조심> (어미새가) 열심히 키우고 있으니 다 클 때까지 옮기지 말아 주세요!ㅠ”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한 아파트 주민은 “주민과 경비원 모두 암묵적으로 이 기구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ㅣ'박새'로 추정되는 생명의 기적ㅣ

태어난 지 약 보름쯤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생명은 박새로 추정된다. 박새는 나무가 있는 도시나 정원, 평지, 숲 등에서 서식한다. 4~7월에 돌담 틈이나 바위 틈 등 작은 공간에서 둥지를 트고 6~12개의 알을 낳는다. 이 아파트의 새 역시 시기가 딱 맞고 태어난 새가 6마리라는 점에서 박새일 것이라는 추정에 설득력이 실린다. 한 주민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박새 가족은 잘 성장해 얼마 전 둥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배려 속에 일어난 기적이 또 하나의 가족을 싹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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