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소재를 찾기 위해 나의 역사가 담긴 도서관으로 입성한다. 그 도서관은 나만 들어갈 수 있지만 주인이 나임에도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쓸만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깊고 깊은 곳에 숨겨진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또 다른 문들이 동그랗게 가득 둘러 쌓여있다. 그 문들은 모두 열쇠로 잠겨져 있어서 그 문을 열기 위해선 몇 가지 동의가 필요하다.
첫째. 진심으로 준비가 되었는가?
둘째. 슬퍼지거나 수치심이 일어나거나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셋째. 한번 문을 열면 웬만함 힘으로는 다시 그 문을 닫을 수 없다. 감당할 힘이 있는가?
*주의사항 :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나는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문을 연다.
그렇게 열린 문에서 나온 이야기를 마주하다 보면 다시 문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떨 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문을 열고 만나게 된 상처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끙끙 대기도 한다.
몇 주 전에 내 발목에 타투를 했는데 큰 검과 무궁화를 새겨 넣었다. 그때 내 발목은 8시간 정도를 바늘에 찔리느라 너무 아팠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눈물이 났지만 참아야 했다. 긴 시간 배고픔도 참고 화장실도 참으며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아픔을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은 내 발목에 예쁘게 새겨질 마지막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픔도 배고픔도 불편함도 수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는 것은 뒤로 도망치더라도 그 과정이 아픔이더라도 마지막의 완성된 글을 떠올리며 내 몸에 새긴 타투처럼 참아낼 만한 가치가 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멈추게 될 때도 있고 상처가 클 때면 글 쓰다 말고 엉엉 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 감정과 반응들을 받아들이며 글을 쓰다 보면 마지막 점을 찍을때즘은 다시 마주하게 된 상처에서 받은 감정들이 치유가 되어 홀가분해진다. 그것은 마치 빼앗겼던 나의 성하나를 다시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다.
글 한편에 담긴 짤막한 이야기가 탄생되기까지 전쟁통 같은 생각과 감정들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시작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