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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헤르쯔 Oct 06. 2022

네가 뭐라고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옷을 사러 이대에 갔다가 어떤 에이전시로부터 명함을 받았다. 나는 기분이 좋아 아빠에게 그 명함을 건네었는데 아빠가 그랬다. "네가 뭐라고?!" 그 말에 나는 바로 얼굴이 빨개졌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 내가 뭐라고?


한마 타면 깜박할뻔했다.

내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다니.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말대로 나는 특출 난 게 하나도 없었다. 성격도 소심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이건 사기가 분명했다. 아니면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이다. 나는 나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무서워졌고 명함 받았다고 신나 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방 안으로 돌아와 공부하는 척을 하는데 심장이 아팠다. 그리고 슬퍼졌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맞지만 부모님에게도 특별하지 않는 존재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오면 아빠는 자만하지 말라고 했다. 자만한 적이 없는데 즐거워하는 것도 자만인 건가 싶어 좋아하는 것을 해도 나는 그 마음을 감추려 애썼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것은 인정받지 못했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다.


나 또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격이 외향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자랑할만한 자식은 아닌 게 확실했다. 삶이 무료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도대체 무얼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나를 낮추는 아빠가 싫었다. 아빠 말이 다 맞더라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아빠가 미웠다. 그래서 나도 마음속으로 "당신이 뭐라고?"라는 말을 했다.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듯이 말하는 아빠를 보면 네네 하면서도 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했다. 아빠가 나에 대해 말하는 그 말이 틀리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럴 힘도, 그럴 용기도, 그럴...

자신감도 없었다...


'네가 뭐라고'라는 말은 오랜 시간 나의 삶에 빛을 꺼버리는 스위치가 되어 작동했다.

나는 그 스위치를 없애지 못하고 내 마음에 박아 빛이 빛나려고 할 때마다 스위치를 내렸다. 그 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인 것도 나이고 그것이 맞다고 선택을 한 것도 언제나 나였지만 오랜 시간 나에게 처음 그 스위치를 만든 아빠가 참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상처받았던 순간들을 이야기하였는데 아빠는 대부분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실망스러웠지만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확실히 상처라는 것은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만 기억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자신의 본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사과를 하셨다. 표현할 줄 몰라서 서툴러서 걱정되는 마음을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던 것에 미안하다고 하셨다. 자신이 잘 배웠더라면 그것을 알려줄 부모가 있었더라면 나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셨다. 아빠는 나에게 한 번도 "우리 딸 예쁘다"라고 말해준 적이 없는데 그날 아빠가 말했다. 우리 딸은 너무 예쁘다고 내가 너무 예뻐서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이다..

나는 이러한 날이 올 거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통화가 끝난 후 꺼이꺼이 울었다. 아빠가 나를 미워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아빠가 처음으로 말해준 예쁘다는 말이 나의 어린 시절 전부를 사랑으로 다시 채울 만큼 기분이 좋아서 행복해서 울었다.


그랬다.. 나의 부모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나를 키우셨다. 키우면서 수많은 후회를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건 그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자식이 부모의 힘듬을 모른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알겠지.. 우리 자식도 부모가 돼보면 내 마음을 알겠지 하며 그 간단한 사과도 미루고 자신의 섭섭함도 꾹꾹 누르며 산 것이었다.



상처받은 마음이 자유롭게 풀려나야 상대의 입장이 온전히 이해된다. 


내가 먼저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기까지 노력이 필요했고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했다. 이해가 되던 날도 있었고 치유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의미가 업던 날도 있었다. 미움이 사라졌다 생겼다를 반복했다. 

온전하지 못했던 용서가 온전히 용서가 되고 미움이 사라진 그곳에 사랑이 들어오기 위해선 결국 아빠의 사과와 진심이 필요했다.


아무리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해도 나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는 내가 아닌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위로가 위로가 되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를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의 그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에 나의 몸 어딘가에 흩어져있던 작은 상처들이, 가시처럼 올라와 있던 날 선 미움들이 모두 사라졌다. 어쩌면 가족이라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어서 나의 상처들은 아빠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도록 이곳저곳으로 도망쳐 숨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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