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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un 20. 2023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죽음

 정순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에 큰일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엄마에게는 일찍 죽은 아들을 대신해서 평생 의지했던 게 자신이었으니까. 언니는 일찌감치 출가외인이 되어 자기 애들 건사하기 바빴고 집안일에는 냉소적이었다. 가세가 기울자 친정에 발길을 끊었고, 아버지가 쓰러졌어도 고작 두세 번 찾아왔던 게 다였다.


 동생까지 마흔이 채 안 되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제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자 어머니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식사를 지나칠 때도 많았다. 어머니 자신을 벌하는 것 같았다. 자식이 죽는다는 게 저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손을 꽉 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썼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남편과 자식을 가슴에 묻고, 보고 싶은 손주를 그리워하며 뻐금거렸던 담배 때문인지, 노환인지 엄마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폐암 증상은 예전부터 진행되었을 것이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간 전이라고 했다. 엄마는 지난주부터 황달 증세를 보였다. 드신 걸 다 게워내고 뭘 드실 수도 없었다. 복수도 차오르고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 팔순이 되도록 꼬장꼬장했던 분이, 딸들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게 되자 24시간 간병이 필요했다. 급기야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은 어머니는 응급수혈을 받으며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제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연세도 많으시니, 지금 상태에서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중환자실 치료를 계속 받으실 수도 있지만, 요양병원을 알아봐 드릴 수도 있어요.”


 “아니에요! 여기서 계속 치료받게 해 주세요.”


 엄마가 평생 우리 자매를 위해서 해 주신 걸 생각하면, 오히려 더 큰 병원에 모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니라면 병원비 걱정에 퇴원을 시켰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 평생 악착같이 벌었고 엄마를 입때껏 모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장례도 가장 좋은 곳에서, 성대하게 치를 것이다. 우리 자매들이 얼마나 건재한지,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우리 엄마가 얼마나 잘 사셨는지 이번에 보여줄 참이다.


 몇 달 전 미자 시어머니 장례식에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장례식장이 맞나?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로비에 화려한 꽃이 만발하고 커다란 전광판에는 ‘이 세상 소풍 후, 이제 돌아가리’ 같은 문구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건 소풍 끝난 후 작별 파티라고 해도 가히 재벌급이다. 


 “이게 얼마짜린데. 요즘은 여기가 대세야. 너도 잘 봐 둬.”


 분향실은 로비와는 달리 매우 고상하게 꾸며져 있었다. 재벌 총수 장례식에라도 온 듯 조문객들도 하나 같이 유명인, 기업인처럼 보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왠지 기가 죽는 건 나뿐일까. 으리으리한 분향대 위에 꽃으로 둘러싸인 고인의 영정이, 오히려 초라해 보이는 건 왜일까. 주변의 공기가 죽음마저 냉소하는 듯 느껴졌다. 


 접객실은 어느 장례식장보다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고급 수제 과자와 향긋한 국화차가 나왔다. 국밥 훌훌 말아 한 그릇 먹고 같이 밤새워 주는 이도, 머릿고기 몇 점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걸치고 대성통곡하는 이도 없었다. 친척끼리 헐뜯다가 멱살 잡고 눈살 찌푸릴 일도 없었다. 요즘 식으로 고상하고 깔끔하게, 가족들과 조문객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고인에게 예를 갖추는, 교양이 철철 넘치는 장례식이었다.


 “여기에 또 좋은 점이 있어. 밤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 거. 밤중에 장례 들어오는 경우를 빼고는 말이야. 상 치르는 사람도 살아야지, 밤 되면 집에 가서 쉴 수 있게 해 주니 얼마나 좋아.”


 정순은 미자가 추천했던 그 장례식장에 엄마를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상관없었다. 엄마의 장례식은 어쩌면 자신에게 더 큰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우리 자매가, 우리 집안이 건재함을 보여주겠다.


* 사진: Unsplash (Paulina P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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