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민 Jun 20. 2023

죄인은 나다

 얼마 전 승진을 하고 바빠서 집에 신경을 통 못 쓰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하니, 애들 엄마가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다. 동네 병원을 몇 군데 다녔는데 의사들은 원인을 모르겠다며 고개만 갸웃거렸다는 거다. 그 사이 통증은 나날이 심해졌고, 다리도 저리고 힘 빠지는 증상까지 생겼다고 했다. 어디 아프다, 힘들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겁이 났다.


 그다음 날 동네 어르신이 원장으로 있는 큰 병원에 갔다. 증상이 심하니 오늘 바로 입원을 해서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에 장모님, 처형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시기로 하고, 나는 다시 출근했다. 저녁에 병원에 가니 아내가 혼자 울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침상에 소변을 봤는데, 병원 직원에게 싫은 소리까지 들었다는 거였다. 원인도 못 찾는 병원에서 아내를 퇴원시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 아내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속 시원히 원인을 밝혀주고 치료도 해 주리라 믿으며. 척수 신경을 누르는 덩어리가 있는데, 그걸 떼어서 조직검사를 해 봐야 무슨 병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을 빨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빈 수술방이 없다고, 다른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동네 어르신의 도움으로 이 분야 명의라는 분을 찾아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이 적어도 4시간은 걸린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1시간도 안 되어 수술을 마쳤다는 전화를 받았다.


 골수 종양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서 그냥 닫고 나왔다는 거다. 아내의 뼈 사진을 보여주며 온몸에 암이 퍼졌다고 했다. 하얗게 보여야 하는 두개골, 척추뼈 여기저기에 거뭇거뭇한 점이 있었다. 이렇게 암세포가 퍼지는 동안 많이 아팠을 텐데. 암 덩어리가 척추뼈를 녹이고 부술 때 그 통증을 어떻게 참았을까. 미련한 사람.


  아내를 만난 건 하숙집에서였다. 파출소 동기가 몇 년 전 맞선을 봤던 사이인데 잘 안 되었고, 우연히 그 집에서 하숙할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마침 누님 집에서 나와 셋방을 찾고 있었는데, 동기와 같이 지내기로 했다.


 “예전에는 밝고 쾌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많이 상했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동기의 말처럼 낯빛이 창백하고 미소에도 생기가 없었다.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온, 서울 여자를 상상했는데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날마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도무지 말이 없었다. 미스코리아 같이 바람머리를 흩날리며 출근을 서두르는 노처녀 언니, 하숙방에 불쑥 들어와 남의 물건을 집어 가는 고약한 습성을 가진 어린 동생과 달리,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숙집 주인 어른에게서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투명 인간 딸과 결혼해서 집에 들어와 살아달라고 했다. 딸이 공부하고 일하느라 살림을 못 배워서, 당분간만 같이 지내자는 거였다. 시골에 계시던 어머니는 이 소식에 펄쩍 뛰셨고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데릴사위는 안 된데이. 야야, 꼭 그래야 되긋나.”


 독립해서 살고 싶어도 단칸방 구할 돈도 없다, 집에서 도와주실 수도 없지 않은가, 여자는 착해 보이니 내가 열심히 벌면 몇 년 내에 독립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했다. 예상했던 대로 결혼 후에도 정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겉돌다가, 6년이 지나서야 첫 아이를 가졌다. 아이 둘을 낳고서야 삶의 의지를 회복한 듯한 아내가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 독립해요. 당신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집도 구하고요. 아이들은 내가 집에서 영어를 가르쳐서 유학 보낼 거에요.”


 아내가 병으로 쓰러진 건 그로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 사진: Unsplash (Akshar Dave)



이전 12화 착하지, 재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