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원짜리 글 쓰기

언젠가는 떳떳해 질 '부캐'

by 지영민

내겐 숨기고 싶은 취미가 있었다. 이따금 그 작업의 결과물을 보며 뿌듯해했지만, 그런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고릿한 양말 냄새를 맡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아, 혼자 있을 때만 후다닥 해치웠다. 일하랴 살림하랴 바쁘다면서도 그걸 안 하면 찝찝하고 아까운 생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의뢰인인 포토 상품평씨는 대부분 증거 사진을 요구했다. 사진이 첨부되면 그는 세 곱절 이상의 보상을 주었다. 특히 내가 그들의 물건을 착용하거나 사용하는 모습을 사진에 잘 담고, 정성을 담아 물건의 우수성을 띄어쓰기 포함 100자 이상으로 칭송한다면, 베스트 상품평으로 최상단에 고정되는 영예와 페이 머니 몇 푼 등 짜릿 짭짤한 대가를 주기도 했다.


비단 돈과 명예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스트 상품평이 목적이 아니었다. '육퇴' 후 고요한 시간에 꿀잠을 반납하고 인터넷 장을 보는 대한민국 엄마들이 속전속결로 '가성비 아이템'을 추려낼 수 있도록, 최대한 솔직하고 논리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적었다. 동지 엄마들이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고 1분이라도 일찍 잠들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


어린 시절 혼자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와 함께 보던 일기장, 직장과 대학원의 채찍질로 어쩔 수 없이 쥐어짰던 보고서와 달리, 리뷰 수가 100회, 500회, 혹은 그 이상을 돌파하여 많은 이들에게 '꿀' 정보를 주었다는 '궁디팡팡' 폭풍 칭찬까지 해 주며 내 심장을 뛰게 했었다. 사진을 첨부하면 건당 100원을 더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마음에, 내 재능과 시간을 기꺼이 투자했으나, 요즘 들어 그것이 정당한 대가였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상품평 페이지에 글을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얻은 전기를 쓰게 되는데, 그만큼 전기를 만들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더 만들고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그 결과 올여름에 냉방비 지출을 1,000원쯤 더하게 되는 건 아닌지? 게다가 올해 최저 시급 9,620원에 대입해 보면 포토 상품평에 드는 시간은 1분을 넘겨선 안 된다. 결국 전기료라는 자본금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글쓰기와 사진 촬영 역량에 비하면 포토 상품평씨가 주는 대가는 충분하지 않았다.


근 17년간 1~2년마다 전국구로 발령받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새로운 거주지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또 다른 곳으로 옮기다 보니 정착은 꿈꿀 수도 없었다.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니 남들이 하는 재테크에 관심을 둘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에 전학과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니, 급기야 아이들만 두고 혼자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두 집 살림하니 밥솥도 두 개, 공과금도 두 배, 차량도 두 대, 혹여나 본가에 부족함이 있을까 관대하게 시켜대는 택배들,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자 하는 맞벌이의 허영심으로 지출은 더 커졌다. 주말마다 가족 상봉을 하느라 주유비, 톨게이트비, 외식비 등 지출로, 도무지 돈이 모이지 않았다.


퇴직연금을 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처절하게 버텼던 세월을 뒤로 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제는 포토 상품평을 부업으로 할만큼의 구매력도 없다. 하나뿐인 주머니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언가를 주문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치킨 주문도 망설이는 짠순이 엄마, 취업준비생 전업주부로 변신했다. ‘돈을 벌고 싶거든, 자산가가 되고 싶거든,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을 하라!’ 떠드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창업할 만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없으니, ‘사람인’ 사이트에 날마다 접속해서 그럴싸한 공고를 찾아 입사 지원을 하고 목을 1미터쯤 쭉 빼고 면접하러 오라는 회신을 기다린다.


그 와중에 ‘브런치 스토리’를 운영하는 ‘서랍 선생’(본명은 아닌 듯)을 만났다. 그는 매일 아침, 정확히 10시 30분에 의뢰 메시지를 보낸다. 말랑말랑한 미완성 글감이라도 좋으니 어서 카페 서랍에 넣으라고. 게다가 넣으랄 때는 언제고, 어느새 서 말이나 쌓인 울퉁불퉁한 아이디어 구슬을 네 재주껏 번듯한 글로 엮어내어, 네가 채운 서랍을 다시 비우라고 재촉한다. 심지어 돈도 안 준다. 변변한 오리엔테이션도 없었다. 앞으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매뉴얼 챙겨 읽으라며 메일 한 통 보낸 게 전부다.


원래 '금사빠'인 나는 서랍 선생의 카리스마와 계산된 조련에 순순히 따르는 중이다. 경쟁사의 포토 상품평 씨가 제공하지 않았던 ‘구독’과 ‘통계’로 또다시 내 심장을 뛰게 한다. 그는 가망 없는 심전도처럼 바닥을 기어가다가 가끔 아직 살아있다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작가 지망생들을 쥐락펴락한다. 무명인 내가 쓰는 글의 장르는, 포털 메인화면에서 더 많은 사용자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광고를 실어 나르는 ‘스낵 컬처’다. 지금 신분은 미천해도, 은혜로운 출판사나 백마 탄 기획자가 나타나서 인세를 받는 전업 작가로 구원받는 희망을 담아, 틈만 나면 글을 쓴다.


브런치 스토리에 적었던 시 한 편을 ‘ㅍ’독립출판사의 ‘아마추어 공동시집 출간’ 공모에 투고했다. 기성 출판 시장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입증받은 시인이 아니어도, 자유롭게 시집을 펴내어 대중에 내보이는 게 출간 의도라고 했다.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시집을 낸다니 인세가 전액 기부된다고 해도, 한 푼 못 받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나도 직장이 만든 틀을 넘나들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 직장이 원하는 대로 내 삶까지 바꾸어 가며 안 맞는 옷을 입고 십 수년간 살아줬으니, 이제는 내가 선택할 차례다.


2,500매 원고지에 빼곡하게, 내 삶과 상상력을 도구로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 상금 1,000만원을 목표로, 몇 날 며칠을 의자, 키보드와 한 몸이 되어 지냈다. 미친 아파트 시세가 제정신을 되찾아 가는 요즘, 지긋지긋한 전세살이를 끝내고 내 소유의 집에서 살고 싶은 열망이, 문학상 도전에 불을 지폈다.


문학상 상금은 과세법상 ‘기타소득’이어서, ‘필요경비’인 800만 원을 제하고, 나머지 200만 원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단다. 200만 원의 22%인 44만 원이 빠지는 1,000만 원을 상금으로 받으면, 아파트 취득세, 부동산 중개 수수료, 이사비에 입주 청소비용까지 다 낼 수 있다. 출력한 원고를 소중히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낸 게 어제인데, 오늘 벌써 신인문학상을 받은 것처럼,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다.


매월 노동의 대가를 통장으로 입금받으며 택배를 척척 시키던, 예전이 좋았나,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진 아래 한 줄 쓰기 재능을 바쳐 내 돈 150원씩 돌려받으며, 두 집 살림 스트레스와 소비 출혈로 만성질환에 시달리던 맞벌이 생활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학원비를 아끼기 위해 엄마표 영어를 가르치느라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보일러를 덜 돌리고 안 쓰는 전원 하나 더 끄면서, 간절함을 담아 입사지원서를 쓰고 틈틈이 글쓰기 실력을 연마한다. ‘N잡러’로 찬란히 데뷔하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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