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 일기>이면서 <1주 일기>이기도 합니다.
새로 만난 친구들과 아프리카식 점심식사를 든든히 먹고 나니 오후 2시다. 발리행 비행기는 오후 6시 40분이고.
일주일간 너무 쉼 없이 다닌 탓에 이젠 좀 쉬고 싶다.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집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는데 오늘에서야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퀸 빅토리아 시장에 가서 멜버른 여행을 했다는 증표로 마그넷 하나만 사고 공항으로 가야겠다.
퀸 빅토리아 시장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지만 시드니의 패디스 마켓을 보고 온 후라 그런지 큰 감흥은 없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어떤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일지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어!'라며 대뇌가 파업선언을 한 것 같다.
발리에 도착하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마사지를 받은 후 하루 종일 얇은 이불에 파묻혀서 잠이나 실컷 자야지.
멜버른에서 발리로 향하는 항공사도 Jet star이다. 주 3일 이 항공사를 이용하니 정이 든 것 같다. 체크인을 하는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사실은 발리에서 언제까지 있을지를 정하지 못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나가는 비행기 표는 끊지 않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나 보다. 일찍 오길 잘했다. 자리에 앉아 대충 근처 도시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로 향하는 티켓을 끊었다.
통장 잔고에 지금쯤 얼마가 남아있는지 조금은 무섭다. 물가 비싼 호주에서 생각보다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괜찮다. 돈은 또 모으면 된다. 짐을 부치고 출국 심사도 끝냈다. 여행 비수기라서 그런지 이번 여행에서는 오래 기다린 적이 없다. 이것도 하나의 행운이라면 행운일지도.
공항 유리벽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대로 잠들 것 같다. 공항행 급행버스에서 온 머리를 휘젓으며 정신없이 잔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 비몽사몽 하다.
아마도 최근 일주일간 과하게 섭취한 카페인이 원인일 것이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이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경험한 모든 커피들이 좋았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도 말이다.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베푼 수많은 이들의 친절들이 감사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I love Korean”이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해주는 사람에게도 고맙다. 투어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국분들도 반가웠다. 수많은 인종들이 모인 이곳에서 경험한 다양성으로 내 안의 세계가 넓어졌다. 그 세계 중 5할 이상은 식(食) 세계인 것 같지만.
새로운 음식의 세계를 맛보게 해 준 요리사와 바리스타들, 시드니의 패디스마켓에서 기타 하나 둘러 매고 용기 있게 노래를 부르던 친구, 본다이비치행 버스에서 만난 형광옷을 입은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선생님들, 끝없는 대지가 저 뒤로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아발론 공항, 내게 기꺼이 앉을자리를 내어준 수많은 녹지들.
이처럼 낭만적이고도 광활함을 느낀 순간도 많았지만 가끔은 늦은 밤 길에서 술인지 마약인지에 취해 무서운 눈으로 따라오려는 사람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안전히 이곳에서 떠나게 되었으니 멋진 여행이었던 걸로!
이제 나는 발리로 간다. 그중에서도 우붓(Ubud)이라는 곳으로 말이다. 조금 더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지기 위해서. 한국에서 회복할 틈 없이 굴렸던 나를 되살리기 위해서.
아 참, 그래서 20kg으로 시작한 이 여행의 마지막은-
여전히 20kg이다.
빠지지도 늘지도 않은 이 무게 그대로 새로운 여행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