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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9. 2023

킬다 해변의 잔디는 축축하지만 낭만이 있다.

<일주 일기>이면서 <1주 일기>이기도 합니다.



36.

킬다 해변의 잔디는 축축하지만 낭만이 있다.



16번 트램을 타고 킬다 해변으로 가야 한다. 무료 트램존을 벗어나기에 멜버른의 교통카드 '마이키'를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휴대폰으로도 가능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혹시나'의 마음으로 휴대폰 이곳저곳을 터치해 가며 뒤적거려 본다. 역시나! 구글 페이가 가능하다. 호주 10달러를 충전했다. 




멜버른의 마이키 교통카드는 구글 페이로 지불 가능하다.



16번 트램이 정류장으로 들어온다. 막상 탑승할 때가 되니 '혹시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안되면 하차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카드 인식판에 휴대폰 뒤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인식이 되지 않는다. 

'아이씨, 이거 조졌네' 

트램 속 많은 사람들 속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했지만 실제로 걱정했던 일이 막상 일어나니 식은땀이 난다.

휴대폰을 조금 더 만져본다. 비접촉 결제의 기본 결제 수단이 'Samsung Pay'로 설정되어 있던 탓이었다. 기본 수단에서 '현재 열려있는 앱으로 결제'를 활성화했다. 


"삐빅" 

마침내 반가운 인식소리와 함께 화면 속에 액수가 찍힌다.

병원 생활 2년 하고도 9개월을 하며 가장 많이 배운 문제 해결의 태도가 여행에서도 도움이 된다.

: 어떠한 문제든 침착하게 직시할 것





트램 창 밖의 풍경
멜버른의 킬다 해변




트램 창밖으로는 연둣빛으로 물든 풍경이 이어진다. 30분가량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St. Kilda beach 역.

하얗게 센 머리칼을 가진 두 할아버지와 함께 내렸다. 킬다 해변의 모래사장과 초록 잔디에는 최소한의 옷만 입은 채 태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몸에 힘을 뺀 채 누워있다. 꿈쩍도 않는 그들은 지금 오롯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어쩐지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잔디다.



맨 잔디에 앉아도 되겠지! 바지 뒤가 축축 해진다. 괜찮아, 빨면 되니까!

그래도 조금 많이 축축한 걸? 속옷까지 젖을 것만 같지만 괜찮다. 멜버른에서의 마지막이니까.


킬다 해변에 온 이유는 사실 한 음식점 때문이다. 혼자 투어온 나의 말상대가 되어준 가이드님은 세계 음식점들을 뿌수고 다니는 나에게 아프리카 음식점 하나를 알려주었다. 자신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친구는 맛있게 먹은 곳이라며. 

그에게 받은 음식점은 꼭 가야 나의 음식 세계지도가 완성될 수 있으니까 오늘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거야!




조용한 킬다 해변에는 햇볕을 사랑하는 호주인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몸을 태우고 있다.




해변가로 거침없이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옷을 다 벗어던지고 뛰어들고 싶다. 속옷만 입고 들어가도 이게 수영복인지 속옷인지 모를 것 같다. 잔디에 앉아 이 순간 내 주변을 지나는 많은 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한없이 푹 가라앉는다. 좋은 의미로.


긴장이 풀린 몸은 한 없이 처진다. 얼굴의 굴곡진 부분은 뜨거운 빛을 받아 발갛게 익어간다. 태양은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더 있었다간 온몸이 구워진 오징어가 되고 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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