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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7. 2024

은퇴 이유를 찾아서


은퇴를 결심했지만,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은퇴하고 싶은지 골몰히 생각했다. 답을 찾기는커녕 금세 다른 생각으로 바뀌었고 결국 현실도피라는 만족스럽지 않은 단어만 떠올랐다. 무작정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봤자 마음에 드는 해답을 찾을 순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은퇴와 관련된 여러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답하면서 은퇴를 갈망하는지 찾기로 했다. 어렵고 불편한 질문보다는 간단하고 쉬운 질문을 던지고 찾아보기로 했다.


언제 은퇴할까?


정년은 정해졌다. 빠르면 32년 7월 31일이고, 늦어도 35년 7월 31일이다. 지금까지는 32년이 유력하다. 앞으로 8년 정도 남았는데, 명예퇴직을 하면 조금 이른 은퇴도 가능하다. 굳이 그러고 싶진 않은데, 부족한 노후준비와 자녀 학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정작 막내 고등학교 졸업까지 생각한다면 앞으로 12년이 필요하다.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조금 더 오래 하려고 발버둥 치면 은퇴 시기가 2~3년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자녀 학업만 생각한다면 지금 삶에 발버둥을 더해야만 한다. 다만, 학업 기준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은퇴한다고 뒷바라지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껏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꾸준하게 군소리 없이 하면 되는데, 근무지는 여러 번 바꿔야 한다. 최소 두 번에서 최대 대여섯 번 정도이다. 근무지를 바꿀 경우 거주지도 옮겨야 하는데, 그게 가장 불편하고 싫다. 그래서 요즘 은퇴 전까지 집을 옮기지 않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얼마 전 실마리를 찾았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하나씩 채워서 충족시키고 있다. 불현듯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일할 경우 은퇴 욕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착이 은퇴 목적인가?


매년 주거지를 옮기다가 몇 년 전부터는 2~3년씩 한 곳에 머문다.  해 살이할 때는 여유가 없었는데, 2~3년 살이로 바뀌다 보니 여유롭게 동네를 산책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든다. 아내와 함께 달리며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만족스럽게 보낸다. 동네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지역 주민들과 관계도 형성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으며 추억도 쌓는다. 덕분에 몇 해 전에 글 쓰기도 시작했다. 정착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까운 곳에서 행복한 기운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천성은 머무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좋다. 이사가 불편하고 성가시면서도 묘하게 끌리기도 한다. 곳에서 몇 계절만 보내스멀스멀 지겨움이 몰려온다. 스무 살 이후로 3년 이상 거주한 곳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2년만 넘기면 지루해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더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심지어는 달리기 코스조차도 지루하지 않게 수시로 바꾼다. 결국 정착과 유랑 어느 하나가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마도 은퇴 후 정착보다는 거점을 정하고 유랑하며 살지도 모른다.


은퇴 후 하고 싶은 은?


여행을 다니거나 글 쓰는 건 즐거운데, 취미정도가 적당한 수준이다. 운동이나 예술 분야도 딱히 끌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50대에 히키코모리로 살 순 없을 테고, 무엇인가 끌리는 것을 찾아야 하는 데 막막하다. 피가 끓지 않는 게 문제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특정 분야에 대해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지거나 몰입해 본 경험이 없다. 대충 그리고 적당히 하다 보면 일정 수준에 다다르고 스스로 만족하고 머문다. 도약이나 혁신이 어울리지 않는 주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퇴 후 한량으로 살기도 싫고 새로운 일을 택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지금 일을 조금 더 연장하는 방법도 있다. 책임은 적고 권리도 적고 돈도 적게 받을 테지만,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편한 숨을 쉴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별도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주변에서 그 길을 택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느낀 점은 자기 선택에 대해 큰 만족도는 없는 듯하다.



질문 서너 개를 통해서 은퇴 이유를 찾으러 가는 길이 흐릿하다. 쉽게 답을 찾을 줄 알았는데, 몇 가지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찾진 못했다. 그나마 짙은 안개에 가린 은퇴 길 초입이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고개를 들어서 눈에 보이는 뿌연 안개를 헤집다 보면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일 테고 그러다 보면 천천히 걸을 용기도 생길 것이다. 다만 은퇴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은퇴를 계획하는데 아는 게 너무 없으니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다음 한 주는 은퇴에 대한 책과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읽어야겠다. 은퇴를 배우고 연구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또렷하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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