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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l 15. 2018

취향획득

76화

아무래도 연재를 주말연재로 변경해야 할 듯 하다.


이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텀블러 블로그에 정말 개인적인 내용을 올리다가 <취향의 세계에 살고 싶다https://brunch.co.kr/@i2romeonj/2>라는 글을 썼다. 벌써 삼년도 넘게 된 글이고 그 사이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 무렵 나는 취향이 갖고 싶었다. 내 취향의 무엇도 없던 시절이다. 겨우 있다고 해도 명함 구석에 소심하게 박아넣은 '여백이 있는 것들' 정도였다. 하지만 여백이 있는 것들을 많이 알지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빽빽한 세상 속에 있었기에 여유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백을 찾았던 것 같다.


오늘 문득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가만히 보니, 이제 나에겐 내가 선택한 내 취향의 물건으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스물여덟이면 그렇게 될 나이인가, 싶다. 입고 있던 옷과 들고 있던 가방, 핸드폰케이스, 작은 소품을 담아 다니는 파우치, 필통, 다이어리. 색깔과 모양이 다 내가 사고 싶어지는(이미 산) 게 아닌가. 괜히 흐뭇했다. 실은 아직도 남의 취향을 탐닉하면서 부러워하고 괴로워도 하지만, 내가 고르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나의 취향을 발견하니 뿌듯한 기분이었다.


용기도 적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는 나로서는 취향의 물건을 이만큼 가지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 하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는 산 지 2년이 된 것이고, 그 때 사면서 내가 정말 이걸 살 의지가 충분한가 고민했다. 아무에게도 '이거 예쁘지?'라고 물어보지 않고 오직 나만의 의견으로 산 첫번째 물건이었던 셈이다. 사서 하고 다녀봤자 매일 보는 건 나 뿐인데도, 엄청 고민했고 썩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하나가 생겼고, 그 후로 정말 드물게 내 취향의 무언가를 발견하면 역시 조심스럽게 소중히 사서 모았다.


말했듯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보면서 감탄하고 괜히 따라도 해보지만, 내 취향의 것을 모아놓고 보니 누구의 예쁜 것들보다 내가 찾은 내 취향이 제일 귀여워보인다. 사람들은 취향보다도 주관이나 신념같은 것을 견고히 다지고 쌓고자 노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 취향이 아닐까. 내가 삼년 전에 쓴 글에서 밝혔듯이 다른 사람의 취향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내 취향의 물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스물여덟의 여름밤을 맞이하는 일이 그랬듯이.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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