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뒤에 숨어버린 조언은 필요없다

당신을 위하는 척하지만, 그들은 당신에게 아무 것도 걸지 않았다.

by 정이안

살다 보면 인터넷이든 실제 삶이든 뜬금없이 자기 딴에는 조언이랍시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내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마치 오래된 조력자라도 되는 듯한 톤으로,

어떤 맥락으로 해당 결과가 나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 한 조각을 얹고 사라진다.

그 말들에 발끈하게 되면 나오는 반응은 대개 다음과 같다,


“쓴 약이 몸에 좋다.”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성장한다.”

혹은

"긁?"


표면만 보면 명언 같고, 어딘가 인간의 지혜를 압축해 놓은 듯하며,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은 문장들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듣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괜히 내 기분만 잡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말들이 애초에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언의 껍질을 쓴 우월감은 조언이 아니다

사람은 단어 하나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본심이 드러난다.

상대를 진짜로 위하는 사람은 말투가 자연스럽고, 단어가 곧고, 호흡이 있다.

반대로, 배려하는 척하면서도 어조의 온도가 존중없는 어휘를 사용한다면,

그건 나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조언인척하는 우월감을 위한 희생양이 될뿐이다.


그런 말을 굳이 귀 담아 들을 필요 없다.

상대가 감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문장은

결국 나를 위한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물을 하나도 공개하지 않는 ‘조언자’는 조언자가 아니다

창작을 하다 보면 유난히 이런 유형들이 많다.

본인 작업물이나 참여작은 단 하나도 보여준 적 없는데

타인의 과정에는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가 큰 사람들.


실패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성장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결과물을 내본 적 없는 사람이 ‘조언자의 권위’를 가질 가능성은 없고

그들은 어디서 줏어들은 단어들을 사용하며 본인이 마치 엄청난 전문가인척 말을 하지만,

공개된 본인 참여작 하나 없는 사람의 말은 공기처럼 가볍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갖다버려도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역사 속 ‘쓴소리’는 맥락을 모르면 흉내조차 안 된다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실제 사례를 들며 나름의 무게감을 첨가한다.

“옛 조언자들은 왕에게 쓴소리를 했고, 쓴소리를 듣지 않은 왕은 무너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과 이해관계를 공유했고,

잘못 말했다간 자기 목이 날아가는 구조에서 조언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둘 사이의 이해관계와 첨예한 대립관계가 말의 무게를 만든 것이다.

이런 맥락을 모른 채, 오늘날의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무책임한 말에

그 시대의 명분을 덧씌우는 건 그냥 허세다.


익명성은 자기 확신 부족의 다른 이름이다

익명 뒤에 숨어 있는 말들은 대체로 가볍다.

이름이 없고, 이력도 없고, 심지어 책임도 묻지 않는다.

그 말을 내뱉은 자는 자신의 문장에조차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감 있는 사람은 절대 익명 뒤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지킬 얼굴과 이름이 필요하니까.


익명으로 던져진 말들이 나에게 오래 남지 않는 이유는

그 말들은 출처가 없기 때문이고, 출처가 없다는 것은 결국 먼지와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하지 않다. 그래서 순수한 조언도 드물다

인간은 결단코 선한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기심, 비교심리, 호전성, 경계심이 자연스레 스며있다.

호모 사피엔스 종이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이동을 시작하며

야생에 혹은 본인이 속한 사회 내에 얼마나 많은 위험들이 있었겠는가

당연히 그에 맞추어서 진화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순수한 조언을 건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은 어떤 한 사람이 잘 되면, 본인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이 잘못되면, 비록 내가 받지 못할 기회일지언정 사회에 기회 하나가 더 생겼다고 생각들을 한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다.

진심어린 걱정과 충고와 조언은 가족이 아니고선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처음 보는 사람이 조언과 충고, 우려, 걱정이라는 이름을 달아 말을 건다면

대개 그건 순간적 재미, 작은 우월감, 혹은 자기 과시다.

그게 아니라면 숨겨진 목적이 있다.


그런 말들을 본인 인생에 담아둘 이유는 없다.

나와 책임을 함께 나누지 않는 사람의 말은 버려야 한다.


결국 기준은 하나다.

“이 말을 건넨 사람은 무엇을 걸고 있는가”

내가 넘어졌을 때 함께 비용을 나눌 사람인지,

잘못된 방향을 잡았을 때 함께 위험을 감수할 사람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은 애초에 나를 향한 말이 아니다.


그런 말들은 지워도 되고, 흘려보내도 되고,

얼른 망각이라는 약을 씹어삼키어,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

내뱉는 말 자체가 책임을 갖추지 못했다면

조언이라는 그럴싸한 외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조언이나 충고랍시고 떠들어대는 말들은 여기서 떨어져 나간다.

남는 말은 생각보다 적다.

그 적디적은 조언과 충고들이 나를 만든다.


익명 뒤에서 던져지는 책임없는 공허한 목소리들은

바람처럼 가볍고, 부유하는 먼지같은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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