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짐짓 아닌 척을 잘 했다. 소위 말하는 '밀당' 같은 걸 하고자 했던 건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견뎌야 하는 상황들이 버거웠던 거다. 생각해보니, 비단 사랑에서만이 아니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나는 늘 아닌 척 시치미를 떼었다. 특히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더더욱. 여우의 신 포도 같은 거지. 나의 전 남자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새침떼기 같다'고 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란다. 어쩌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일지도 몰라." 갖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말하고 나면, 나는 그것을 갖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누군가 그걸 구해 내 손에 쥐어줄 일은 없으므로. 그래서 갖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조차 감도 오지 않으니까.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애매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면- 나는 새삼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는 걸 자꾸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아닌 척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도피이자 비겁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