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가 빨간 죄인이 되어서요.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됐어요. 혼자 산 지는 이제 꽤 오래 되었고, 혼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건 일상이에요. 심지어는 혼자 하는 여행에도 맛을 들려서 며칠씩 연달아 쉴 기회가 생기면 자꾸 코레일 예약앱을 들락거려요.
서산이나 대전, 속초 중 한 곳을 정해 혼자 휙 여행을 다녀올까 했어요. 그런데 마침 친구들과 때가 맞아 총 넷이 모여 강릉 여행을 다녀오게 됐어요. 평일 낮의 관광지는 생각보다 더 한적하고 조용해서,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액자가 하나씩 걸렸지 뭐예요. 강릉 본점에서 먹은 교동짬뽕의 맛도, 춘천 닭갈비 거리에서 먹은 진짜 춘천 닭갈비의 맛도 나만 먹기엔 새삼 아까워서, 머릿속으로 몰래 '아!'하고 말았죠, 뭐.
예전에 그런 문장을 본 적이 있어요. '이제 나는 네가 없이도 너를 사랑할 수 있다'였나? 시집에서 본 것도 같고, 노랫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요, 저는요, 다른 건 혼자 잘하는데 역시 사랑은 혼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없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조차도 결국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잖아요. 정말로 혼자서 가능한 사랑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일밖엔 없지 않을까 해요.
저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그 사람이 내게 귀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티끌만큼의 나쁜 일도 저지르고 싶지 않아지는 일이요. 꿈에서라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는 일이요. 그러니까, 허락 없이 그 사람의 등을 와락 끌어안는 상상만 해도 죄를 지은 것처럼 귀가 빨개지는 일이요. 상상만으로도 자꾸 죄인이 되는 일이요.
벌써 동네 벚꽃 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혔어요. 꽃망울들이 나를 약올리는 것 같아요. "어머, 당신은 또 어떤 죄를 지었나요? 이 길에는 귀를 빨갛게 물들인 죄인들이 많이도 지나가네요!"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도 죄인이었으면 해요. 나를 조롱하던 꽃망울이 퍽하고 터져 흩날릴 때 서로의 죄를 사해줄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