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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Feb 08. 2021

"죄송합니다. 답변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란 말은 하고 싶어서.


'죄송합니다. 답변이 늦었습니다.' 메일함을 확인할 때, 중요한 메일은 따로 분류해서 '중요메일함'으로 넣어둡니다. 아주 중요한 메일이니 지금 대충 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제대로 답변을 하겠다는 뜻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따로 분류를 해두고는 답변을 하는 것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내내 뭐라고 답할지 고민만 하다가 아주 늦게서야 '아참, 답변을 하지 않았구나!'하고 깨닫고 말아요. 뒤늦게 부랴부랴 답변을 하려고 보면, 이미 관련된 일의 데드라인을 넘긴 뒤일 때가 허다하죠.



그럴 때면, 메일을 보낸 이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합니다. 핑계는 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보낸 메일의 내용은 내게도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는 꼭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때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이게 전부입니다.



당신으로부터 도착한 마음은 몇달 내내 들여다 보았습니다. 결코 가벼이 여겨 답변을 잊었다거나 미뤄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내가 답변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망각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메일과는 참 다릅디다. '죄송합니다. 답변이 늦었습니다.'하고 뒤늦게나마 답을 보낼 수도 없게 됐습니다. 늦은 일에는 절대 핑계를 대는 법이 없는 제가, 새삼 핑계라도 갖다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주절주절 길게도 늘어놓은 답변에는 '보내기' 버튼이 없네요.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보내려 했던 기다란 글을 깨끗하게 빨아 빨래 건조대에 널었습니다. 햇빛에 바짝 말려 까만 글씨가 하얗게 퇴색하도록 가만히 둘 요량입니다. 다시 몇달쯤 시간이 지나서, 나도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가물가물해질 무렵에 나는 다시 새 글을 쓸까 합니다. 물론, 중요메일함은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예정이고요. 주변 친구들은 "그러니까 중요메일함 따로 쓰지 말고, 메일을 받는 대로 바로 답하라"고 잔소리를 찔러넣지만, 역시 나는 중요한 건 따로 보관하고 내내 들여다 보아야 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공개적으로 이런 글을 올린다 하여 노여워 마세요.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이 누군지 모를 것이며, 어쩌면 당신도 이 글 속 '당신'이 당신인지 모를테니까요. 또한, 당신 역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모든 이들 앞에서 노란 별이 번쩍번쩍하는 '중요 메일'을 내게 떠안기지 않았습니까. 그냥 퉁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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