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기-사랑’ 마라톤 17km
선선한 바람. 선풍기.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초록색 식물의 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다. 갓 도배한 하얀색 벽지는 냄새 없이 잘 말라가고 있다. 아침에 좋지 않았던 컨디션은 어느샌가 마라톤 17km를 뛰는 동안 없어져 버렸다.
차오르는 숨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숙제처럼 써야 할 글의 분량들도, 아픔이 사랑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백 한 가지 생각들도 전부.
10km까지 뛰었을 땐 몰랐던 것들을 17km를 달리고 나니 느껴진다.
글쓰기에 필요한 정신위생상태. 10km 마라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시원하고 쾌적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이상의 달리기는 고통과 동시에 모든것을 내려놓게 만들어준다.
나에게 ‘17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일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든다.
몸에 느껴지는 고통과는 정 반대로 마음의 고통은 점점 내려간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나의 몸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고통을 참고 13km즈음을 뛰다보니 발목에는 점점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나 뛰어가야 할 시간은 아직도 한참이나 멀게 느껴진다.
고난 속 행군이 보여주는 일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시키게 만든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뭘까. 평가와 판단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번잡한 생각과 평가와 판단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120분을 5분 남겨두고 미친 듯이 전력으로 뛰어봤다. 조금이라도 더 채워보려고 달려봤다. 그리고 마지막 30초까지 야무지게 채워 마침내 17km와 121분의 달성!
러닝머신을 멈추고 나니 짐승처럼 헉헉대기 시작했다. 발목에 통증이 있었다는 것도 이제 다리를 절면서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을 극한으로 써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해 내야 한다'는 평가와 판단이 잔뜩 들어있는 생각들을 멈추게 해 준다. 잠재워 준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고통과 그것이 끝나게 될 순간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한다.
평가와 판단은 완전히 멈추었다가 달리기를 마치고 러닝머신 속 비친 내 얼굴을 보았을 때,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 얼굴이 땀에 젖어 못났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든다. 또 김밥을 사러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에 가는 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읽고 판단하게 된다.
'땀이 난 내 모습이 이상해 보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조우가 시작되는 순간 시작된다. 완전하게 ‘지금 이 순간’ 을 느낄수 있는 몸에 집중된 시간에서 벗어나면 평가와 판단이 자꾸만 생기게 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땀으로 젖은 나의 얼굴이 뿌듯함과 보람으로 잔뜩 취해있다. 상기된 빨간 얼굴이지만 긴 시간 동안 장거리를 뛰어낸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직장에서 도전하기-버티기의 연속이었던 한 주간의 시간. 그리고 주말.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가장 중심에서 어떠한 평가와 판단을 내려놓는 시간.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이겨내고 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사랑의 시간.
이 평가와 판단으로 얼룩진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아줄 수 있는 우리만의 '작은 틈'을 만들어 내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