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게 다 비슷비슷하다
지난주엔 과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재직했었던 동료분들이 안양 근처에 업체 미팅이 있어서 왔다가 일찍 끝났다며 연락이 와서 급 만남을 가졌었다. 뚜벅이로 만나러 가는 길에 육교를 건너는데 ‘육교를 건너봤던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 경험에 패턴 벗기 놀이가 진행되는 길목 같았다. 요즈음엔 수시로 걷고 걸어 본다. 이로써 차로 이동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바라본다.
나는 마케팅팀이고 그분들은 IT 팀이라 부서도 다르고 해서 재직 당시 많은 교류가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연차에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종종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기도 하고 좋은 커리어 기회가 있을 때 소개해 주기도 하고, 가끔씩 OB 멤버들 모임이 있을 때 만나게 되는 멤버들이다.
최근 5년간 재직했었던 회사들은 나보다 어린 나이의 직원들이 80% 이상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보니 삶의 속도가 달라서 이야기의 주제나 관점들이 다소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들의 나잇대에 존재했었던 나를 대입시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했던 반면에, 서른 중반까지 재직했던 회사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거나 비슷한 나잇대의 동료들이 다수였던 회사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들을 만나면 - 위아래로 압박이 있는 리더도 경험해 보고, 다양한 규모와 유형의 기업 문화도 겪어보고, 여럿 미친놈도 겪어보고, 일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있는, 최소 10년 차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분들 - 삶의 속도와 고민들이 비슷해서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갈리지는 않으니 좀 더 걸림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일에 치이느라 바쁘게 지내왔던 그간의 긴 시간을 건너뛰어, 이 즈음해서 비슷한 주제로 고민과 의견을 공유하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들이 내 주변에 있었구나.. 새삼 이 날의 급 초대와 만남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한 분은 마흔 중후반의 골드미스 부장님이시고, 한 친구는 동갑내기의 곧 둘째 아빠가 되는 친구인데 각자의 고민들이 있었다. 골드미스 부장님은 워라밸 없이 일하시면서 요즈음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현타가 자주 온다 하시며 이제는 퇴직 후 넥스트 삶을 고민하고 계셨고, 동갑 친구는 앞으로 아이 둘이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을 더 키워야 하는데 와이프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고 본인의 직장생활 하나만 믿고 가기엔 무언가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제는 직장인 모드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사업을 해보려고 여러 시도와 고민들을 하고 있기에 대화 주제가 서로 통하는 지점들이 많았다.
여자로서 마흔 중후반 나이까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시면서 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워라밸 없이 일하시는 부장님이 참 존경스럽다. 뛰어난 능력으로 임원급까지 올라가는 여자 직장인들이 있기는 하나, 그 과정이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고 회사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정치적인 경쟁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인데 그러한 여러 가지를 감수하고 극복하시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셨다는 점이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장님은 나와 본인이 회사에서 일을 대충대충 하지 못하는 비슷한 성격이라고 표현해 주셨지만, 나는 직장인 모드에서 워라밸이란 포기할 수 없는 우선순위가 높은 조건이었기에 일을 대충대충 하지 못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밤낮 구분 없이 주말까지 슬랙과 이메일을 붙잡고 회사 일에 대한 퍼포먼스가 직장생활의 동기부여는 되지는 않았다. 유한한 시간 채우는 인생 게임에서 각자가 선호하는 게임 장르가 다른 것이겠지?! 그러하기에, 나는 지금 나의 게임 장르에 대해서 적절한 지점에서 적절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생각만 해왔던 생각들을 풀어놓으며 허무맹랑한 아이디어와 얕은 고민들일 수 있으나, 반면에 이러한 대화 속에서 생각만으로 존재했던 혼자만의 스케치들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더 구체화하고 서로의 의견들로 살을 붙이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떠들어댔다. 그 어떤 것도 현실화될지 1% 의 예측도 할 수 없지만, 이미 현실화되어 버린 것 마냥 부장님 왈 “왠지, 오늘을 계기로 나중에 우리가 뭔가를 같이 하고 있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라면서 공원 내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긍정회로들을 마구 굴렸다. 두 분 다 하남 시민들이셔서 다음번엔 내가 하남을 방문하기로 했다.
모든 시작은 다 헛소리들의 퍼즐 조각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작은 퍼즐 조각들이 정말로 채워질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고 교차되고 사라질지는 하루하루 작은 도전과 실행들로 알차게 채워 나가다 보면 그중 어떤 무언가는 공중으로 날아가고 남는 것들은 현실이 되지 않을까? 뭐.. 어차피 시간 채우는 게임은 무엇으로든 마음이 동하는 것들로 즐겁게 시간을 채우면 되는 것이니까. 진주를 꿰매듯이. Move forward. 그러기 위해서, 필요충분조건은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운동하고 잘 공부하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시작이고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