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speeche 어플을 사용하여 녹음, 이후 수정하였습니다.
조카를 보러 여동생네 집에 다녀왔다.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많은 비가 내렸다. 조금씩 날이 개고는 있지만 여전히 낮게 드리운 잿빛 구름에서 코 앞까지 성큼 다가온 겨울을 느낀다.
출근 시간을 살짝 넘긴 아침, 거대한 구름 더미가 낮게 깔려 있다.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은 구름이 유독 빨리 흘러간다. 거리의 건물들이 오늘따라 작아 보인다. 겹겹이 쌓인 구름이 순간 흩어져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 그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어릴 때 공항과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았다. 비행기가 시끄럽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글쎄,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비행기는 매우 낭만적인 이동 수단이다.
아득한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비행기. 무게만큼의 중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특별한 비일상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는 굉장히 귀여웠다. 동생이 보내 주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이제 꽤 컸나 싶은데 직접 보면 아직도 조그맣고 귀엽다. 옹알이도 하고 부쩍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행동이 늘었다.
볼 때마다 쑥쑥 자라고, 세상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아 간다.
나에게는 일상적인 풍경 대부분을 조카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두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손을 내밀고, 데려다 달라고 하고, 호기심을 가진다. 아직 두 돌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 엘리베이터 버튼을 혼자 누르고 싶어 한다. 조카를 보면 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가 싶기도 하고 한때 나도 이렇게 새 생명의 약동을 보여 주는 존재였을까 싶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조카를 보고 올 때마다 부모님과 나를 키워 주셨던 할머니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얼마 전 바뀌어 가는 취미에 대해 글을 썼다. 지금도 이런 변화가 급속도로 찾아온 게 스스로 좀 의아하다.
20대에는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체가 즐거운 취미였다. 요즘은 새로운 걸 접해도 그를 소화해 나만의 무언가로 다시 내놓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면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퇴사 후 꽃꽂이와 메이크업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했는데, 큰 기대 없던 메이크업이 의외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내가 가진 도구로 내 얼굴에 직접 실습하면서 감각을 익혀 이후에도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단장하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기술 한 가지가 늘어난 데서 오는 만족감이 아닐까.
생화를 다듬는 꽃꽂이도 재미있고 좋았지만 매번 새로운 재료를 준비하지 않으면 재현하기 쉽지 않아 메이크업에 비해 재미가 덜했다. 그래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꽃꽂이를 하고 싶다.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생화를 직접 다듬으며 스스로 ‘새로고침’하고 싶어서.
그런 의미로 조카를 직접 보는 건 나에게 신선함을 준다. 물론 핏줄인 내 동생이 낳은 자녀라서, 아기라서 귀여운 것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대부분의 아기들은 사진보다 움직임을 보는 게 훨씬 더 매력적이다. 아기 거북이 바다로 가는 길을 찍은 다큐 볼 때랑 약간 비슷하다. 생명과 생장에 대한 감동적인 그런 느낌이 있거든.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장 숭고한 창작 활동 중 하나가 출산과 육아가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아직은 임신이나 육아를 하지 않으니 가족의 창작활동을 옆에서 지켜볼 수도 있고, 창작물의 살아 움직임도 볼 수 있다. 나 자체도 뭔가 창작하고 싶어서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셀프 메이크업을 해 보기도 하고, 일기를 쓰거나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써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된 결과물로 바꿔 보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소모되어 간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사람들은 왜 유적지나 관광 명소에 낙서를 쓰는지 논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해 김영하 소설가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소멸하기 때문에 영원해 보이는 곳에 자기를 남겨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에도 물론 동의한다. 내 의견을 추가하자면, 낙서나 이름을 자물쇠에 새겨 거는 것이 누구든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창작물이라 그런 게 아닐까.
유튜브 영상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글을 쓰고 댓글 달고 논쟁하는 행위도 짧지만 모두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익명으로나마 자기의 존재를 내보이는 창작활동인 거지. 내가 유튜브에 댓글을 달거나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건 브런치라는 나만의 온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일기장 어플을 썼고. 어떤 이야기든 내 언어로 쭉 써서 아카이빙하고 그걸 되짚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만약 브런치가 없다면 자아 표출을 하고 싶어도 봐줄 사람이 없으니 어딘가에 댓글을 쓸 수도 있겠다.
아 그리고 인스타를 최근 그만둔 이유를 생각한다. 원래는 과욕, 라캉의 말처럼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 성실하게 받아서 그대로 투영하는 걸 그만두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욕망하길래 나까지 알게 된-취미든 여행이든 맛집이든-무언가 들, 남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게 싫어서 그래서 그만둔다. 그렇게.
그도 그렇지만 지금은 음, 내가 창작한 콘텐츠를 기록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크게 보면 사실 소비에 대한 기록이라서, 그래서 흥미를 잃은 것 같다.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보았다. 사진과 영상, 짤막한 글을 생성했다. 그도 나의 창작물이 맞지만, 사실은 인스타 업로드 버튼 누르는 이유 만들려고 소비만 더 했다는 생각이 컸다. 말이 약간 중언부언하는데 러프하게 브런치 업로드 전 스피치로 녹음해서 다듬을 예정이라 두서없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요약해 보자면 브런치도 플랫폼 사업가가 열어 주는 개인 공간이긴 하지만 어쨌건, 여기는 진짜 나만의 공간이거든. 타인이 나의 글을 보아 주고 반응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는 내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곳이다.
인스타그램은 그런 생각이 잘 안 든다. 내 공간이라기보다 거대한 어떤 리뷰 창 같은 느낌. 인플루언서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더 그런지. 어찌 되었든 나는 인스타그램 피드나 스토리로 올린 건 '내 콘텐츠‘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유튜브 댓글 같은 건 당연하고. 인스타그램 속 나는 여행이나 구매한 물건, 관람한 것에 대해 별점 매기고 리뷰 쓰는 내돈내산 체험단 같다. 그래서 우선 지금은 흥미를 잃어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일상 공유가 아니라 일상처럼 보이는 비일상을 만들려고 여기저기 돈 쓰러 다닌 기록집 같은. 이걸 극복할 수 있을 때 다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고독한 나만의 싸움이네.
누가 하라고 떠밀지도 아닌데 그냥 즐기면 되지 무슨 생각이 이렇게 많은가 싶다.
스마트폰을 너무 오래 붙잡는 것 같고 오랜만에 폴더폰 쓰고 싶어서 당근마켓을 검색했다. 거의 거래 직전까지 갔는데 어젯밤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멈췄다. 새 스마트폰 산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도 잘 쓸 것 같지 않은-그러니까 원래 목적대로 쓰지 않을 것 같은-소비를 하려는 데 대한 대화였다. 거창해 보이지만 대화 내용은 아주 일상적이었다. 남편이 '폴더폰이 쓰고 싶어서 그런 거면 사' 이렇게 말해서 좀, 정곡을 찔리는 기분에, 거래를 중단하였다.
퇴사 후 간간이 대진하거나 번역 일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쉬는 중이다. 그런데 지금껏 해내야 할 업무가 있는 삶을 살아 그런지 시간을 의미 있게 쓰거나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있어서. 룰루랄라 신나게 계절을 즐겨도 모자란데 사실은 뭔가 무거운, 밀도가 아주 높은 어떤 액체에 서서히 잠겨서 아래로 가라앉는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
특히 누워서 스마트폰 하는 시간이 늘었는데 이상하게 누워 놀기만 했는데도 화면을 닫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자신 있게 멀리 두고 책을 읽거나 알차게 공부하지도 못한다. 멀리 두었다가도 다시 찾아가서 여는 일이 잦다. 이상하게 생각만 많고. 그걸 환경 세팅으로 탈피할 수 있을까 해서-스마트폰으로 못 노는 상황을 강제로 만들면-어떻게든 창조적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에서 추진하려다, 딱히 그 말도 솔직한 것 같지 않고. 안 하려면 그냥 안 하면 되는데 나의 어떤 불안감 때문에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에 많은 어플이 저장되어 있지만 모두 다 자주 쓰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진이 들어 있지만 항상 다 보는 것도 아니긴 하거든.
그리고 오늘 만난 동생과 신나게 이야기하다 폴더폰(꼭 화이트여야 한다)을 구매하면 달고 싶어서 골라둔 폰 스트랩을 다섯 가지나 공유하고 말았다. 나는 폰 스트랩을 매달고 싶어서 폴더폰을 사고 싶었나? 그것도 약간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아이폰에도 스트랩을 매달 수 있는 케이스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 억제는 아이폰 스크린타임 어플로 환경을 세팅해 볼까 싶다.
스피치 녹음이 거의 끝나간다. 이제 어플을 종료한 다음에는 나의 음성을 따서 저장된 원문을 다듬어 문단도 나누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좀 신경 쓰고, 그렇게 새로운 글을 완성해 보고자 한다. 오늘은 메시지를 둔 글이라기보다는 순간순간 나를 스쳐가는 생각에 대한 일기이다.
안녕.
2023.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