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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1. 2023

부모가 된다?!

묵상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3년 4월호 기고문

몇 년 전 남편 장군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한 ‘지구 환경 스터디’를 곁눈질하면서, 환경적 재앙의 첫 번째 원인으로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은 지구가 적절한 생태 시스템을 유지할만한 적정 인구를 넘어선 지 오래이고, 곧 감당할 수 없는 포화점에 이르게 되리라 전망했다. 세계의 일부에서 이미 서서히 시작된 에너지, 자원, 물, 식량난이 점차 가속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에선 초저출산에 당면한 선진국이 곧 젊은이들이 모자라 국력이 곤두박질할 것을 우려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보자면 모두의 숙제는 ‘인구 증가 문제’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그 전부터도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는 방법’에 대해 자못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결혼 전부터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기도 했거니와, 이런 시대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의 대상이 꼭 생물학적인 내 자손만을 의미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함께 도달한 지점은, 만약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우리 유전자를 고집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과는 별개로 우리에겐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다. 결혼하고 한두해는 쏜살같이 흘렀고, 그 다음엔 긴 여행의 계획이 본격화되며 미루었고, 여행을 다녀왔고, 그러다보니 7년이 훌쩍 지났다. 예비졸업생에게 취직이 처녀총각에게 결혼이 그렇듯, 애 없는 부부에게는 출산이 때마다 가장 껄끄러운 질문이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선배에게조차 ‘용기가 없어 애도 못 낳는 게’ 하는 농담(?)을 들을 후로는, 이 문제에 있어 타인의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절반쯤 접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우리 두 사람에게 ‘부모됨’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세상의 곳곳에서 함부로 버려진 아이들을 만났고, 마땅한 부모의 사랑 밖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깊은 아픔이 우리를 여러 번 울게 했다. 장군은, 우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입양을 자신의 숙제로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세상인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이 아픔을 덜 수 있는가 눈물로 물으면 언제나 질문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니? 누가 했으면 좋겠니?” 


그 마음의 부담과는 별개로, 한국에 돌아올 무렵부터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를 오래 지켜보신 선배는, 모든 고민과 계획은 인생의 기본적인 사이클 위에서 이루어진다며 우리를 타이르셨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순리를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이다. 옳은 말씀이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한 시간이 반 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슬쩍 ‘입양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꺼내다 호된 질타로 혈족 중심 유교 사회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으나, 진로나 주거와 같은 다른 이슈들처럼 부모됨 역시 길을 찾되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올 해, 우리에게 기린 꿈과 함께 ‘그린 기린 그림’이가 찾아왔다. 0.59mm의 아기에게서 나오는 심장 소리를 들은 순간의 경이를 기억한다. 콩알만한 아이가 벌써 엄마의 몸을 뒤흔든다. 임신은 신비롭고, 이 생명은 내 목숨보다 귀하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또 한 인생이 세상에 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대체 어떤 손님이 우리에게 찾아올 지 궁금하다며 장군은 들뜬 얼굴로 기대를 감추지 못한다. 감사와 기쁨과 기다림 속에, 아가는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직 한 번뿐인 경험이지만, 우리는 이 감격과 감사가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된다 한들 조금도 감해지지 않으리라 기대하게 되었다. 어떤 부모가 되어 어떤 가족을 이룰 것인지 묻고 살아내는 과정 중에, 언젠가는 우리가 여행 중 마주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 때, 구한대로 살게 하실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생명이 온 세상’이라는 사실을 실존으로 배우는 이 때에, 태중의 아이 뿐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든 생명들을 다시금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간절한 그 기도 끝에 인정하게 되는 고백,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모두에게 참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이, 어쩐지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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