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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리 Apr 19. 2024

캐나다에서 전하는 한국의 맛

레 마미톤스(Les Marmitons)에 최초로 한국의 맛을 전하다




그리운 고향의 맛


캐나다에 오기 전, 나는 음식을 잘 먹기만 했지, 직접 요리를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캐나다에 처음 와서 Prince Edward Island에서 헬렌 아주머니와 제랄드 아저씨의 집에서 두 달 정도 머물었을 때, 헬렌 아주머니도 상당히 요리를 잘하시는 분이라 나와 남편에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다. 그런데 매끼니로 양식을 잘 먹는 남편과 달리,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속이 편안한 완전한 한식 입맛의 소유자였던 나는 양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적잖이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그곳은 섬이라서 한인마트에 가기도 쉽지 않고, 어쩌다 한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라면과 딜피클을 쟁여두었다가 느끼한 속을 달래며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고향음식을 종종 그리워했었다.


그러다가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캐나다에서 접하는 음식들 중에서 우연히 한국 음식의 맛과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때면,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캐비지롤(Cabbage Roll),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이탈리안 웨딩 수프(Italian Wedding Soup)였다. 모두 캐나다의 전통음식은 아니었지만,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캐나다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나라의 음식들 중, 한식의 맛을 조금이나마 대체할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개인적인 느낌이었지만, 한식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나에게 고기와 야채로 속을 채워 돌돌 만 양배추를 토마토소스와 함께 쪄서 만든 캐비지롤은, 한국의 김치찜과 비슷한 맛이었고, 독일어로 ‘신맛이 나는 양배추’라는 뜻의 사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피클류로, 우리의 백김치 맛과 비슷했다. 그리고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에는, 이탈리안 웨딩 수프를 마치 미역국이라 생각하며 들이키곤 했다. 내가 얼마나 한식을 그리워했었는지, 맛을 상상하며 나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나는 소위 맵부심이 있었을 만큼 한국에서 매운 음식을 즐겨 먹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오래 살면서 입맛도 많이 변하고, 이제는 김치만 먹어도 맵다고 느껴지는 맵찔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뿌리 한식


이제는 캐나다에 온 지도 벌써 12년이 되어가고 셰프로서 한국의 맛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2015년, 캐나다의 요리학과에서 요리 공부를 하던 때, 요리의 기초부터 세계의 다양한 요리의 이론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언제쯤 수업에서 한식이 언급될까?’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캐나다에서 여러 나라 유학생들과 현지인에게 동서양의 요리를 가르치는데, 한식이 제대로 언급되거나 실습의 주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아시아 요리는 종종 언급되기도 하는데 말이었다. 요리학도였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이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과연 한식을 잘 알고 있나? 외국인이 나에게 한식에 관해 물어보면 한국 요리의 역사와 종류, 만드는 방법 등을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나? 나의 솔직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나는 한식을 잘 먹기만 했지, 한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며칠 동안 한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한식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한식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





레 마미톤스에 최초로 한식을 전하다


카지노를 떠나 셰프레이의 파인다이닝 수셰프로 오게 되면서,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점점 안정기에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모교인 캐나다 요리학교 교수 셰프님의 부탁으로 레 마미톤스(Les Marmitons)라는 미식가 클럽의 요리 강습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레 마미톤스는 고급 음식, 와인 및 요리 예술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가진 미식가 및 사회 지도층 신사 클럽으로, 공인된 마스터 셰프를 초대해 셰프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요리를 배우며 코스에 어울리는 와인 및 음료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요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아마추어 요리사들의 정기적인 미식 사교모임이다.


<레 마미톤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어린 요리사, 즉 주방장의 도우미를 의미한다(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르 마미통’). 레 마미톤스의 전통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30여 년 전 스위스 이민자들에 의해 북미에 소개되었다. 북미 최초의 레 마미톤스 지부는 1977년 몬트리올에서 설립되었고, 그 후 캐나다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모임에 교수 셰프님을 도와 참여했는데, 어느 날 레 마미톤스로부터 직접 한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아주 짧은 고민 후 바로 대답했다. “안 될 것 없지요. 좋아요!”


그날부터 한식 강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했다. 어떤 한식 요리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참 많은 고민이 되었다. 평소 늘 생각해 왔던 것처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식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구할 수 있는 한식 재료와 서양인의 기호를 고려한 끝에 <발효음식의 나라 한국>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코스 메뉴를 계획했다. 서양요리만 배웠던 내가 한식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한국의 장과 발효음식에 대해 느꼈던 감탄과 자부심을 외국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식 요리법? 느낌 아니까!


30여 명의 레 마미톤스 회원들이 코스별로 팀을 나누어 함께 요리를 했기 때문에 게스트 셰프로서 나는 자세한 조리법 설명서(레시피)를 만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재료들의 이름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영문으로 레시피를 작성하고 사용할 재료에도 혼선이 없도록 하나하나 라벨을 붙이는 과정에서 한 가지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아, 그동안 내가 한식 요리를 할 때 내 느낌대로 요리해 왔구나.’


한식 강의 미장플라스 @김혜리


서양 요리 레시피를 보면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의 정확한 용량, 온도, 조리시간과 만드는 방법, 몇 인분인지 등이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원하는 양을 요리할 수 있는 반면, 한식은 예로부터 만드는 사람의 손맛을 중요하게 여겨 ‘한 줌’, ‘한소끔’, ‘적당히’, ‘솔솔’, ‘칼칼하게’, ‘자박자박하게’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처음 한식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런 표현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식 재료의 영문 표기 역시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레시피를 작성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도 내가 먹는 요리를 할 때는 그날그날 기분 따라 입맛 따라 ‘느낌 아니까’ 요리법을 애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한식이 더욱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정확한 한식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한식 요리법이 더 다양한 언어로 소개된다면 머지않아 세계의 요리학과 교재에도 실리게 될 거라고 생각된다.




캐나다 신사들의 단아한 만두 빚기


레 마미톤스 그룹 실습에 앞서 먼저 한식의 기본인 오미(五味)와 오색(五色) 고명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식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醬)을 소개하며 한식은 여유식(Slow food)으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서양의 코스 요리에서 애피타이저는 보통 샐러드나 수프로 정해지는데, 나는 한국의 만둣국을 첫 번째 코스메뉴로 정했다. 만두 빚는 방법도 배우고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만두피에 비트와 녹차를 이용해 색을 내는 법을 알려준 후, 모든 과정은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 나갔다.


장미 만두 @김혜리


직접 만든 멸치육수를 서빙하고 있는 회원 (이 회원은 본인이 만든 육수맛을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김혜리
직접 만든 만둣국을 시식중인 회원들 @김혜리


만둣국 프레젠테이션 @김혜리
첫 번째 코스요리를 맡았던 팀의 프레젠테이션과 시식평 @김혜리
나이아가라 컬리지 요리학과 은사님, 셰프 알란 커 (Alan Kerr) 교수님과 함께 @김혜리


두 번째 코스는 잣퓌레, 백김치, 연근 칩과 함께 접시에 담은 대구 무조림.



키친에서 두 번째 코스 플레이팅 중인 레 마미톤스 회원들 @김혜리


두 번째 메뉴 프레젠테이션과 시식 중인 회원들 @김혜리
간장 대구 무조림과 잣퓌레, 백김치, 연근칩, 간장젤 @김혜리




세 번째 코스는 불고기 비빔밥.


요리하기 전에 방법 설명중 @김혜리
직접 불고기를 만들고 있는 회원들 @김혜리
비빔밥에 쓰일 고명 @김혜리



알란 교수님과 한식 강의를 어시스턴트를 해준 후배 김준희와 @김혜리
비빔밥 프레젠테이션 @김혜리


마지막 디저트는 찹쌀가루와 식용 꽃을 이용해 만든 화전과 호두곶감말이, 그리고 수정과를 만들고 그 옆에 솔잎에 잣을 끼워 함께 플레이팅 했다. 나의 요리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살려 접시에 담는 것이다. 시각적인 포인트를 살리되 멋을 부리기 위해 먹을 수 없거나 맛이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룬 요리를 하려고 한다.


회원들이 직접 만든 호두곶감말이 @김혜리
직접 화전을 만들고 있는 레 마미톤스 회장님과 회원들 @김혜리
한식 디저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본인 @김혜리
마지막 코스 한식 디저트 프레젠테이션 중 @김혜리


이날 음료의 경우, 한식과 페어링(Paring)할 수 있는 한국의 전통주를 캐나다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방법으로 제철 식재료들을 이용해 담가 두었던 과일효소와 함께 칵테일을 만들어 함께 시음을 했다.



레 마미톤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한식 강의를 하며 한국의 맛을 알릴 수 있었던 즐겁고 뜻깊은 경험이었고, 마지막에 레 마미톤스 회장님으로부터 감사패도 전달받았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K-Food가 머지않아 세계 곳곳의 요리 학교에서 당당히 소개되는 날을 꿈꿔 본다.



장미만두 만들기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LL031tQEAo



사진 :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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