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by 오윤

시나이산,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예언자 엘리야, 야훼가 그에게 계시를 내리는 풍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멋지다. 앞서 이야기한 (그러나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엘리야의 상황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에 유일신을 섬길 것을 제안하여 전통 종교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엘리야. 그 시절, 바알을 무시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귀중한 신적 자원’을 포기한다는 뜻인데 엘리야는 과감하게도 그 모든 포기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바알 예언자들을 학살하는데.. 학살에는 복수가 따르는 법.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들여온 이세벨 여왕의 분노, 그녀의 복수가 있을까 두려워 도망자 신세가 되는데... 학살할 때의 마음은 어디갔는지, 도망자 신세가 된 엘리야는 곧 우울한 상태에 빠졌고, 고독했으며 불안했다. 그는 혼란스런 마음을 한가득 싣고, 이스라엘을 떠나 시나이산에 있는 야훼 신전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계시를 기다렸다.


야훼가 엘리야에게 계시를 내리는 장면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가냘프고 조용했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가리우고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이것은 감추어진 신성이었다.

#10-1 엘리야.jpg 출처: https://ibpf.org/the-prophet-elijah-was-depressed/


신성

야훼의 목소리는 자연의 격렬한 힘이 아니라 소리의 가냘픈 속삭임 속에서, 산들바람의 움직임 속에서, 소리를 내는 침묵이라는 역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Armstrong, 2006/2010, p. 120).


초월의 순간,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돌파, 그것은 조용하게, 산들바람처럼, 가냘픈 속삭임으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단호하기도 했다. 속세의 풍요를 표상하는 바알 신앙과의 경쟁에는 단호해야 했다. 단호하게 배척해야 했고, 그렇게 세상의 논리, 탐욕, 증오,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했다. 현실의 논리에서 초월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돌파를 해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과거를 부정해야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여타 신, 여타 계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어야 했다. 과거와의 결별, 이웃과의 결별은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야훼는 자주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정의와 공의라는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비난을 받게 된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도 충분히 정의를 존중하고, 가난한 자, 고아, 과부를 존중한다고!!”


그렇게 야훼 대 비야훼의 경쟁이 시작된다. 당시 야훼 유일 운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훼에게만 희생을 드리고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은 무시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입장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과거의 흐름, 주변의 동무와 단절된 외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Armstrong, 2006/2010, p. 125).


새로운 여행의 시작, 그런데 주변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제국의 위세는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태풍이었다. 외부의 거친 풍랑 위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주 부딪쳤다. 때론 제국에 저항하기도 했고, 때론 제국과 동맹을 맺기도 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같이 의기투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제국의 입김은 길게 강하게 이어졌다.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과 유다를 점령한 데 이어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 지도층을 강제 이주시켰다. 유대인 포로 생활은 페르시아가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유대인이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할 때까지 이어진다(Drane, 2010/2011, p. 171).


#10-3 포로.jpg 출처: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의 '포로들의 대이동'.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태인들이 포로로 끌려나오는 모습을 그림. 뉴욕 유태인박물관 홈페이지


그 기간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 시련의 시기였고, 이 시기 예언자들의 언어는 날카로웠다. 그 언어의 힘은 자주 제국의 침략을 신의 분노로 은유했으며, 외부로부터 흘러온 힘들은 과거의 질서를 헝클어 놓기 일쑤였다. 가령 예언자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가 활동한 기원전 7~8세기. 예언자들은 신을 자신의 모든 것을 낚아채 가는 파괴적 힘으로 경험했고, 기존의 질서는 허물어져 갔다. 어떤 왕은 죽임을 당했고, 어떤 공간은 파괴를 당했으며, 누군가는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나야 했다.


개인도 국가도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고, 자아에 상처가 났다. 기원전 7세기, 바빌로니아의 위협으로 예루살렘이 위기에 있을 때,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는 모두가 한사코 외면하고 싶던 이야기였다.

‘(예루살렘은) 결국 망한다’,

‘바빌로니아 군대에 항복하는 사람은 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을 것이다’.

‘너희는 왕도, 예언자도, 제사장도 썩었다. 망하는 이유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졌다. 너희를 버리는 이유다.’ 등등


그러나 무너진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폐허가 된 자리, 나의 견고한 자아가 무너진 자리, 거기를 채우는 것은 신의 영이었다.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을 하던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제국이 중근동 세계를 유린하던 고난의 시기에 신은 무너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며 이렇게 호명하곤 했다.

‘나의 종, 야곱아’,

‘내가 택한 여수룬아’.

신은 죄 지은 이스라엘, 죄책감에 사로잡힌 백성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친근하게 부름으로 곁을 내주곤 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폐허 위에서 신이 인간에게 준 메시지

“두려워하지 말아라”

현실이 제 아무리 힘겨워도 주눅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김기석, 2020, 5, 31).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시대가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설상가상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삶은 다시 불확실하고 어두운 터널로 들어간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럴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란 인간, 문명, 과학에 대한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신의 가호를 빌며 한 발 한 발 최선을 다해 가는 것뿐이다. 두려워하지 말며, 주눅 들지 말며...


#10-4 자코메티 광장.jpg 출처: 알베르토 자코메티, 〈광장〉, 1948~1949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조각가 자코메티)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는 것, 그리고 또 한발 내디뎌 걷는 것, 나를 두려움으로 이끄는 숫자, 전염병, 절망, 원망, 당혹스러움, 그 마음을 떨치고 일어나 또 한발 걷는 것! 어려운 시대일수록, 외부의 시련 때문에 자꾸 주눅 드는 시대일수록 잊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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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Armstrong, K. (2006). The great transformation : the beginning of our religious traditions.

정영목 역(2010). 축의 시대. 서울: 교양인.

Drane, J. (2010). The World of the Bible. 서희연 역(2011). 성경의 탄생. 서울: 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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