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중동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기원전 599년 고레스(Cyrus Ⅱ, 키루스 2세)가 지금의 이란 남부에서 페르시아 왕좌를 이어받았다.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를 공격! 결과는? 시대를 지배하는 제국이 바뀐다. 자연스럽게 바빌로니아의 식민지들은 하나하나 해방된다. 고레스는 조로아스터교의 신도지만 자신의 종교를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어찌나 큰 축복이었는지, 제 2의 이사야라 불리는 유다의 한 예언자는 그를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 불렀다. 얼마나 기뻤던지 에스겔의 고통스럽고 리얼한 목소리를 잇는 제 2 이사야의 목소리는 서정적이기 그지없다.
성경의 언어로 풀어보자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은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이 귀환은 정말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온 해방이었다. 마치 8.15 광복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여기서 성경은 고레스를 이방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도구로 묘사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부른 것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도우려고 함이었다. 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너에게 영예로운 이름을 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이사야서 45:4)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이사야는 신이 고레스(키루스)를 지명하여 부른 것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고레스의 의도와는 무관한 해석되겠다. 그러나 고고하게 흐르는 역사의 공간에서 일개 그 공간의 한 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고레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스라엘은 해방을 맛보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거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야훼 하나님은 매우 강력한 모습으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주다.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네가 비록 나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너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겠다(이사야서 45:5).”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이사야서 45:7).”
'나'라는 단어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이사야는 하나님의 힘을 강조한다. 세상의 모든 일, 빛과 어둠, 평안과 고통이 오롯이 나 “주”에 달려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너무 나쁜 일에 크게 낙담할 이유도, 반대로 너무 잘 되어가는 일에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 이유도 없는 거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인연들, 사건들을 신의 마음에 접속하기 위한 도구로 삼을 때, 내가 아니라 신이 주어인 관점에서 해석할 때 삶은 어제보다 한뼘만큼이라도 풍요로워지고, 1그램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이사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13세기의 아랍 시인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여인숙>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가 참 좋다.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아서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야비함, 그리고 어떤 찰나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설령 그들이 그대의 집 안을 가구 하나 남김없이 난폭하게 휩쓸어가 버리는 한 무리의 아픔일지라도. 그럴지라도 손님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셔라. 그는 어떤 새로운 기쁨을 위해 그대의 내면을 깨끗이 비우는 중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미움, 그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여라. 어떤 손님이 찾아오든 늘 감사하라. 그 모두는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보낸 분들이니."
나의 삶을 여인숙이라고 은유하고, 그 여인숙에서 마주하는 인연, 경험들을 주관하는 연출자를 신이라 생각하면, 삶은 하루하루 흥미로워진다. 수많은 사건에서 허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실패와 좌절의 스토리도 다음 회를 기다리며 재미있게 마주할 수 있을 거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의 흐름을, 잘 되지는 않더라도 삶의 연출자 내 안의 선한 영이 기뻐할만한 메시지로 가득 채우는 것. 우리는 이 고군부투의 메시지를 공의, 생명, 평화라 부른다. 그리고 이 메시지 밑에 흐르는 정서는 따뜻함과 유쾌함.
점점 더 따뜻함과 유쾌함을 무대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할수록, 점점 더 올바름과 생명과 평화를 경시하는 시대가 도래할수록, 새로움은 바로 그 메시지 속에서 탄생하는 것 아닐까? 구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