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슬피 울 것이다. 슬피 울 것이다.

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by 오윤

고레스의 대관식이 있은 후 유대인 한 무리가 바벨론을 출발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이 귀환 스토리에 대해 전해지는 내용은 거의 없다. 아마도 이들은 새 고향을 보는 즉시 환상이 깨졌을 것이다. 유다는 황량하고 이질적이고 황폐했을 것이다. 자신의 고향에서 바빌로니아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지지부진했다. 지지부진할 때 인간은 두 손을 모아 신을 호명한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15-1 성전의 재건.jpg 출처: Gustave Dore. https://emeng.tistory.com/


예언자 학개. 도시 건설보다 성전 건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동료 스가랴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성전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때는 기원전 520년, 학개와 스가랴는 자신들이 역사의 전환점에 있다고 믿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된다면 유대민족이 평화롭게 성전에 들어가 아름답고 개방된 도시를 만들거라 믿었다. 학개도 스가랴도 예루살렘이 열린 도시가 되기를 바랐다. 담도 없어야 했다. 성소 건축의 목적은 하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야훼의 백성을 단결시키는 것, 동시에 사방의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


잘 되었을까? 꿈과 비전은 낭만적이었지만 현실은 비루했다.

낭만적인 스가랴의 꿈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스가랴서 9:10)


15-2스라랴.jpg 출처: https://biblechurch.org/zechariah-the-promise-of-a-branch/


비루한 현실은 어땠을까? 평화의 지평선은 예루살렘을 넘지 못했고, 비폭력을 외치던 이들은 폭력에 의해 살해당하곤 했다. 인간이 만드는 스토리는 그런 거였다. 힘을 가진 이들은 무정했고, 잔인했고, 자기 욕심과 욕망에만 충실했다. 동정과 자비, 그런 마음이 자리 잡을 자리는 없었다. 이 냉혹한 현실을 성경은 이렇게 담아낸다.


“그는 양을 잃어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으며, 상처받은 양을 고쳐 주지도 않으며,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하며,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을 것이다.”(스가랴서 11:16-17)


냉혹한 시대와 냉혹한 사람 앞에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 돌파구는 인간의 언어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시 외쳐야 했다.

“신이시여”

구원의 방편은 현실 논리에 있는 게 아니라 신의 “영”에 있었다. 우리는 이 영을 은혜와 용서라 부르고, 그 영을 지배하는 감정을 슬픔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의 백미, 절정은 용서와 슬픔에서 빚어지는지도 모르겠다.


15-3슬픔.jpg



“내가,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 외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슬피 울며 맏아들을 잃고 슬퍼하듯이 슬퍼할 것이다”(스가랴서 12:10)


스가랴서 12장 ‘예루살렘의 구원’ 편에서 10절부터 14절까지 ‘슬피 울 것이다’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울 수 있는 마음, 둔감하게 외면하고 냉정하게 무시했던 어떤 타자의 목소리에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나의 둔감함과 냉정함에 눈물 흘리며 회개할 수 있는 마음. 이 슬픔의 마음이 한층 한층 쌓여갈 때 이야기는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서 슬프게 울 것이니, ... 기막히게 울 것이다. 온 나라가 슬피 울 것이다. 다윗 집안의 가족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며, 그 집안 여인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다. 나단 집안의 가족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며, 그 집안의 여인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다. 레위 집안의 가족들이 따로 슬피 울 것이며, 시므이 집안의 가족들이 따로 슬피 울 것이며, 그 집안 여인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다. 그 밖에 남아 있는 모든 집안의 가족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며, 각 집안의 여인들도 따로 슬피 울 것이다.” (스가랴서 12:11-14)


슬피 울 것이다. 슬피 울 것이다. 이 눈물이 없다면 과연 치유라는 게 구원이라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눈물로 갈아 엎어진 마음, 어쩌면 거기로부터 새로운 스토리가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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