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마셜. 대학 시절 두터운 미시 경제학 교과서에서 본 이름. 마셜은 경제학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수요와 공급 곡선, 한계 효용의 법칙 등의 이론을 돈의 세계에 들여왔고, 캐임브리지 대학에 경제학과를 개설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셜의 삶은 자신이 구축한 이론만큼 깔끔하고 도전적이기도 했다. 가을, 겨울, 봄은 캐임브리지에서 여름은 알프스에서 보냈다. 매년 6월초 케임브리지를 떠난 마셜은 10월이면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의 건장한 모습으로 교정으로 돌아온다. 알프스에서 그는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났다. 배낭 하나를 메고 두세시간 동안 걷기만 했다. 그러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보통 빙하에 그대로 앉는다. 배낭에서 괴테, 헤겔, 칸트, 스펜서 책들을 꺼내어 해가 질 때까지 독서에 몰두한다. 철학적 묵상 단계다. 여름이 중반에 접어들면 그는 빙하에 걸터앉아 본격적인 경제학 공부에 돌입했다. 그는 보통 배낭 하나만 둘러멘 채 산 속 깊숙이 몇 주 동안 돌아다녔다. 그는 가장 어려운 분석의 대부분을 이 고독한 알프스 산책에서 해냈다(Buchholz, 2007/2009, P. 209).
활기찬 푸른 눈의 마셜, 그는 경제학을 정치학에서 독립하면서 이런 말을 전했다.
“경제학은 부의 축적에 관한 연구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다. 경제학자는 냉철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따뜻한 가슴을 잊지 말아야 한다. (EBS, 2014, 9, 8)”
마셜의 등장전까지 마르크스도, 리카도도, 어떤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이 만들어지는데 사용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돈의 세계의 정설이었다. 마셜은 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치가 노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맞지만 도대체 노동시간을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경제학이 눈앞의 현실을 다루는 실용학문이라면 눈앞에 드러나 가격, 그것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는 물건을 만드는 데 소요된 노동시간이 아니라 이 물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를 중요시 여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다고 생각했고, 효용은 가격으로 표현되어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였고, 이 아이디어의 배경은 이랬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반면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욕망이 수요를 만들어내고 한정된 자원이 공급을 만들어낸다.
기업은 한정된 자원으로 이윤극대화를 위해 움직이고 개인은 무한한 욕망으로 효용극대화를 위해 움직인다.
이는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 곡선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미시경제학의 시작이었다.
미시경제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공급자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마셜은 이 분석의 논리적 설득력을 높이는 분석 프레임으로 알프스의 어느 골짜기에서 생각했을 것이 분명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세터리스 패버러스(Ceteris Paribus)'
분석하려는 대상 이외의 다른 부분은 모두 변하지 않는다면?
실험실에서 가능할 듯한 이런 가정을 토대로 이론들을 구축해 간 것이다(Buchholz, 2007/2009, p. 215).
당연하게도 세터리스 패버리스는 알프스 골짜기를 넘어 현실 세계에서 적용할 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는 마셜 이후 정립된 미시 경제학이 비판받기도 하는 지점이고, 경제학이 돈의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헛발질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셜이 제기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 한계이론, 내부경제와 외부경제, 가격탄력성 등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돈의 세계를 이해할 때 꽤 많은 도움을 준다. 부동산, 환율, 금리, 주식시장 등을 이해할 때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비껴가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한계이론은 내가 볼 때 가장 혁명적인 이론 중 하나이며, 내부경제(분업, 대량생산, 자원의 대량구매, 첨단기계 도입 등)와 외부경제(문화적 토대, 클러스터, 연관산업의 발달, 숙련노동의 공급 등) 등의 개념은 불평등이 점점 더 고도화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설명할 때 반드시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돈을 벌고, 대기업이 모든 혁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돈이 서울로, 강남으로 모이는 이유 등등.
돈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만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마셜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부동산 정책, 만약 임차인을 보호하는 게 정말 정책의 목표였다면 마셜은 공급을 늘리라고 말했을 것이다. 공급이 늘어야만 가격이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셜이 지금 한국에서 환생한다면 이런 주장을 할 거다. 첫째, 가난한 자, 서민들을 위해 임대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 둘째, 재개발 재건축을 죄악시하지 말고, 대신 재개발 재건축시에 임대아파트를 좀 더 짓게 한다. 셋째, 임대차보호법 등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전체적으로 전세 공급을 줄여 정책 의도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 집주인들이 세제상 혜택을 보려면, 그리고 부동산 투자에 있어 시간적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그리하여 전세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년 기본 소득에도 대찬성을 했을 거다. 마셜이 쓴 경제원론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똑같은 1실링이라도 부자의 1실링과 가난한 자의 1실링은 같지 않다. 1실링이 주는 만족과 기쁨은 같지 않다.”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 원론 중, EBS, 2014, 9, 8)
그렇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그것이 주는 만족과 기쁨은 부자와 가난한자, 청년 실업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같지 않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1실링에 대한 효용이 높은 청년에게 기본 소득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거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탐욕, 1%의 욕망에 대해 이런 일침을 가했을 거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너희 그렇게 계속 욕심 부리면 점점 더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 가성비가 떨어진다구. 적당히 욕심부리시오!!”
마셜은 세상의 점진적 개선을 믿었고, 늘 그 개선에서 최우선으로 관심을 둔 집단은 가난한 자였다.
“나는 방학기간 중 몇몇 도시의 빈민가를 걸어다니며 최하류층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정치경제를 연구하기로.(EBS, 2014, 9, 8) ”
수요와 공급의 원칙, 한계이론 등 그가 전파한 경제이론은 어찌보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빚어진 이론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마셜이 마르크스처럼 혁명을 외친 것은 아니다. 평생 마셜은 점진의 철학을 기반으로 삼았고, 상아탑과 대중 술집 사이에서 중도를 찾고, 순수한 이론과 세속적 현실 사이에서 중용을 취한다(Buchholz, 2007/2009, P. 214).
그는 단순히 해답을 기다리지 않고 해답을 찾아다녔다. 해답이 정책으로 채택되기를 그냥 기다리지 않고 의회에 나가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어떤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신중한 고려 없이 수용하지는 않았다. 다른 이의 어떤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세심한 검토 없이 물리치지도 않았다. 어쩌면 돈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였냐, 생각하면 그건 알프스 산맥에서 수학공식을 갈기던 마셜, 비탈길과 평원, 변화와 균형, 진화와 안정을 조화시키려 했던 마셜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한마디로 매우 매력적인 경제학자이고, 돈의 세계를 탐험할 때 자주 호환할만한 사상가다.
두터운 미시경제학 책을 볼 때는 몰랐지만...
<참고문헌>
Buchholz, T. G. (2007).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 류현(2009).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서울: 김영사.
EBS (2014, 9, 8). 지식채널 E <경제시리즈 시즌3 2부 : 따뜻한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