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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4. 2024

막걸리는 위로가 되지 않아.

음미하다 2

농번기에 우리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은 단연코 막걸리였다. 마을 사람들 열에 아홉이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아이들의 손길조차 간절했던 농번기의 그 분주함은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한자 쌀 미(米)가 농부의 88번의 손길을 의미하듯, 농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하는 힘든 일이다. 

 

 막걸리는 그런 힘든 시간 사이사이 활약했던 동네 제일의 응원군이었다. 하도 맛있게 드시는 아저씨들의 모습에 막걸리 맛이 참으로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그러다 금단의 벽을 넘기로 했다. 가게 한구석에는 빈 막걸리병만 따로 모아서 쌓아놓는 상자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빈 병이라도 바짝 말라 있는 법은 없었다. 바닥에 조금 남아있던 막걸리를, 막걸리 뚜껑에 모아 담았다. 작은 막걸리 뚜껑은 서너 방울만으로도 충분히 넘실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치밀한 경계 뒤 과감하게 마셔버렸다. 아저씨들처럼 나도 “캬아”를 연발할 것을 기대했다. ‘캬아‘라고 하는 추임새를 왜 내는지 그 답을 찾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막걸리가 목구멍으로 채 넘어가기도 전에, 뱉어내고 말았다. 그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걸 도대체 왜 먹지? 어떻게 이렇게 맛이 없는 걸 먹을 수 있지?’


 내가 이렇게 막걸리에 대해서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고 결별을 선언할 때쯤, 나와는 반대로 남동생은 막걸리에 대한 궁금증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남동생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면 해결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텔레비전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우리 집 TV를 깔끔하게 분해해 버리기도 했었다. 


 남동생이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느 날이었다. 점심 이후로 보이지 않는 남동생을 찾다가 슬슬 걱정이 될 때쯤, 마을 초입에 있던 커다란 공덕비 뒤에서 남동생이 누런색의 양은 주전자를 털레털레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도 남동생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말도 이상하게 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이유 없이 실실실 웃으면서, 때때로 양은 주전자를 사방팔방으로 휘둘러댔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검은 넝마를 입고,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상한 아저씨 한 명이 어디선가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동생의 모습이 그 아저씨와 비슷해 보였다. 


 다급하게 어머니께 달려가 상황을 보고했다. “엄마, 얘, 미쳤나 봐. 막 혼자 웃고 이상해. 말도 이상하게 해.” 동생은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마루며 작은방과 안방까지 휘젓고 돌아다녔다. ‘갈수록 가관’이라는 말은 남동생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난리를 피우던 와중에 양은 주전자는 절대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어머니가 빼앗은 양은 주전자에는 막걸리가 조금 있었다. 


 그랬다. 남동생은 가게에서 몰래 가져간 막걸리 한 병을 거하게 마시고, 취했던 것이다. 서너 방울을 막걸리 뚜껑에 따라 마신 나와는 수준이 달랐다. 막걸리를 양은 주전자에 부어서 나름의 형식까지 갖춰서 마셨다. 떡잎부터 남달랐다고 칭찬할 수도 없고. 그러나 걱정은 마시라.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께 해장국을 끓이게 한 남동생은, 지금은 든든한 가장으로, 성실한 사회인으로 잘 지내고 있으니. 


 괴상한 맛에 놀라고, 남동생의 망아지 같은 행동에 놀라, 막걸리는 근처에도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대학 입시에 실패할 때까지는 그 약속을 잘 지켰다. 십이 년 동안의 나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은 처참한 날이었다. 바로 그날, 내 손에는 막걸리 뚜껑이 아니라, 양은 막걸리잔이 있었다. 아버지가 건네준 막걸리와 파전이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딸을 위로하는 아버지라는 감동이 넘실대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미안하다. 현실의 나에게 막걸리와 파전과 아버지의 위로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맛도 없었고 그저 내가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는 사실만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몸 상태만 더 엉망이 되었다. 술을 마신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대학 입시 실패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막걸리는 나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런 막걸리가 우리 동네 아저씨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우리 가게에서 막걸리는 농번기에만 잘 팔린 것이 아니었다. 농한기에도 제일 잘 팔린 것은 역시나 막걸리였다. 술에 취해 비틀대다 넘어지고, 여기저기 노상방뇨를 하고, 입 양쪽으로 막걸리 거품을 뽀글거리면서 쉰내를 풍기고, 루돌프 사슴도 아닌데 코는 새빨갛고, 어머니가 힘들게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깨끗한 이불에 누런 코를 풀어대던 아저씨들은 모두 농한기 막걸리가 만든 작품이었다. 


 도대체 적당히라는 것이 없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듯 부어대는 아저씨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끔찍했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요즘은 아저씨들뿐만 아니라, 아줌마들도, 청년들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술에 빠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술로만 증명하려는 듯, 술에 빠져 있다. 술 없이도 어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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