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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Oct 19. 2024

산자는 함께!

음미하다 12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어릴 적에는 생일과 명절이 제일 좋았다. 반복되는 일상을 단번에 뒤집는 묘한 흥겨움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명절은 마을 전체를 감싸는 맛있는 냄새와 떠들썩한 설렘까지 보태져 기분은 마냥 하늘을 날았다. 


 추석보다는 설날이 더 좋았다. 세뱃돈 때문이 아니다. 당시 우리에게는 세뱃돈 문화가 없었다. 설날이 더 좋았던 이유는 하얀 눈과 하얀 가래떡 때문이었다.  운이 좋으면 밤새 펑펑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었고, 현실감을 상실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가래떡을 먹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설날이 다가오는 것은 달력이 아니라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모여 산자를 만드시는 것을 보면서 알아챌 수 있었다. 바사삭 거리며 한입에 씹히는 것과는 달리, 만들 때는 오랜 시간과 많은 정성이 필요한 산자는 느림과 공동체의 미학을 가득 담은 음식이다. 


 산자는 절대 혼자 만들 수 없다. 동네 아주머니의 품앗이가 필요했다. 그만큼 과정이 번거롭고 어려운 산자 만들기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어떤 일손도 보태지 않고 먹기만 해도 되는 ‘어린이’라는 특권이 있던 나는, 산자를 매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머니께 볼기짝 맞을 소리였겠지만, 나에게 산자 만들기는 재밋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축제 같은 순간이었다. 


 산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앗간에서 찹쌀을 빻아오는 어머니의 발품이 필요했다. 빻아온 찹쌀가루를 시루에 쪄서 커다란 절구통에 옮기면, 어머니와 아주머니들께서 마치 달나라의 토기들 마냥, 서로 마주 보고 서서는 끊임없이 절구질을 하셨다. 쿵더쿵쿵더쿵 절묘하게 박자를 맞추며 한참 동안 절구질을 하셨다. 당시에는 당연하고 재밌게만 보였던 그 장면이, 지금 생각하니 고맙고 애처로운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깨며 허리에 파스를 한가득 붙였어야 했던 고된 노동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절구통에서 찰지게 반죽된 찹쌀 덩어리는 마룻바닥에 옮겨져, 손바닥보다 더 작고 얇게 빚어졌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만든 얇고 넓적한 찹쌀 반죽은, 아버지가 불을 지펴놓은 뜨끈한 작은방에서 이삼일 정도를 보냈다. 한겨울이었지만 찹쌀 반죽이 마르던 작은방은 한증막만큼이나 뜨거웠다. 반죽은 쩍쩍 갈라지면서 잘 말라갔다. 


 반죽이 마르는 이삼일 동안 어머니는 읍내에 가서 쌀 튀밥을 튀겨 오셨다. 쌀 포대에 담겨있던 두 되의 쌀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만큼 많은 튀밥이 되어서 돌아왔다. 튀밥 포대를 열면 따뜻한 튀밥의 향과 고소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포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머니의 매서운 포효와 물리적인 충격을 생각하며, 온 힘을 모아 참아야 했다. 튀밥 포대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 대신, 튀밥을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서 양손 가득 쥐고 입 안에 욱여넣는 안전한 현실을 선택했다. 갓 튀겨 온 튀밥을 입에 한 움큼 넣으면 ‘살살 녹는다’라는 표현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된다. 


 찹쌀 반죽이 부서질 정도로 바짝 마르면, 우리 집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역할이 정해졌다. 마른 찹쌀 반죽을 기름에 튀기기, 튀겨진 산자를 물엿에 버무리기, 물엿이 입혀진 산자에 튀밥을 골고루 묻혀주기, 다 만들어진 산자를 정리하기. 


 누르스름한 작은 찹쌀 반죽을 달궈진 기름에 넣으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작디작은 찹쌀 반죽이 순식간에 달처럼 동그랗고 하얗게 커졌다. 너무 아름답고 신기하고,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이나 ‘빨강머리 앤’보다도 열 배 백배 더 재밌었다.


 찹쌀 반죽은 뜨겁게 달궈진 기름에 들어가는 순간이 제일 중요했다. 숟가락을 양손에 들고 빠르게 산자의 모양을 동그랗게 잡아주어야 했다. 찰나의 순간만 놓쳐도 산자 모양이 엉망이 되거나, 부서졌다. 그래서인지 가장 경험 많은 할머니들이 주로 그 자리에 앉으셨다. 다 튀겨진 산자는, 달콤한 물엿으로 범벅을 한 뒤 튀밥을 듬뿍 발랐다. 혹시라도 튀밥이 떨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꾹꾹 눌렀다. 아무리 꾹꾹 눌러도 바싹해질 대로 바싹해진 산자가 부서지지 않는, 놀라운 비법만을 터득한 분만이 할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 튀밥으로 마지막 치장을 끝낸 산자는 커다란 봉지에 차곡차곡 쌓여 커다란 대나무 상자에 담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자는 설날 차례상의 주인공으로 한자리 차지하고 나서는, 겨우내 우리들의 간식이 되었다. 


 내가 산자 만들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산자를 만들면서 볼 수 있는 그 모든 과정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모든 과정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산자 만드는 과정이 주는 기쁨은 사실 산자의 맛보다도 더 달콤했다. 


  산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면,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아까워,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진다. 하지만 산자보다는 산자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좋아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어도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과 노력으로 충분하다고 나에게 말한다. 

 '내가 겪은 모든 과정은 어디선가 맛있는 열매로 무르익어 가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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