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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대화 14. 도시 가로수와 시골 가로수

심긴 곳에서 할 일 하는 나무가 나에게 한 말

by 단비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모든 잎을 떨구고 맨몸이 드러난 겨울 가로수를 보며)

시골 사람: 여기 불났었어요? 뭔 가로수들이 불탄 것처럼 이렇게 시커멓대요?

도시 사람: 불난 적 없는데요. 원래 나무 색깔이 저런 거겠죠?

시골 사람: 원래 나무 색깔이라뇨.

(나무에 눈을 바짝 갖다 대고 살펴보더니)

이거 매연에, 분진에 찌들어서 새까맣게 때가 낀 거네요.

도시 사람: 아, 시골 나무는 이런 색깔이 아녜요?

시골 사람: 그럼요. 나무니까 심긴 곳에서 말없이 버티지. 발 달렸으면 벌써 달아났겠네.


남는 질문

우리는 발이 달려 있는데도 왜 달아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발 디디고 있는 걸까?


남는 생각

도시의 가로수가 새카맣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의 나무들은 새카맣지 않다는 사실도 몰랐다. 보라고 펼쳐도 보지 못하는 자에겐 의미가 없고, 들으라고 읊어도 듣지 못하는 이에겐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가로수는 자신의 처지가 시골의 나무들과 다름을 비교했을까? 발이 없어서 심긴 자리를 옮기지 못함에 대해 탄식했을까? 그랬을 리가 없다.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다른 본성과 비교하며 투정하는 인간의 심보를 나무의 것으로 이입하여 표현했을 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이런 일방적인 감정 이입에 대해 반박하는 일이 절대 없으니까 말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저마다 생의 대가로 무언가를 책임지고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평화의 기술자다. 세상 그 무엇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존재 자체로 휴식이 되고 작은 평안을 가져다준다.
- 우종영,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발이 달려 있어도 달아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발 디디고 있는 이유가 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일까? 이런 질문을 나무에게 한다면 뭐라고 답할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나에게 마땅히 주어진 일을 할 뿐이야. 너는 너 할 일 해.”라고 할 것 같다. 물론 이건 나무의 대답이 아니라 나의 대답이다. 나무에게 물었으나 나에게 한 질문이었고, 누군가 답해주길 기다렸으나 내 안에서 들려온 답이었다.

당신은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진 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으셨나요? 현재 그 일을 하고 계십니까?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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