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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선용 Nov 21. 2021

일기예보가 다 맞는 건 아니었어

詩詩한 일기

없는 사람, 끼니 닥치듯 겨울이 온 것 같아요. 이번 가을 또한 속절없이 갔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지구를 파괴한 탓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어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의식이 공동체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사막처럼 건조해진 것은 순전히 기후 탓만 아니겠죠? 한동안 반지하 방에서 산 적이 있었어요. 개미집처럼 올망졸망 모여 살았더랬죠. 대부분 하루살이다 보니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나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더라고요. 뭐, 이렇게 살아본 적 없는 분들이야 이런 걸 이해하겠어요? 이해한다고 해도 일부분이겠지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눈 오는 어느 날이었어요. 119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깼지요. 웅성거린 쪽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건너편 집에 사는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신 거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독사인 거죠. 가족도 없는 것 같았어요. 설사 가족이 있더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관계가 끊어진 경우일 수도 있겠지요. 나도 그렇지만, 말 못 할 사정으로 그렇게 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최근 어떤 보고서를 보면 젊은이들도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젊다고 고독사가 없는 것은 아니겠죠. 세상에 올 땐 순서가 있지만, 갈 땐 순서가 없다고 하잖아요. 아무튼 홀로 고독하게 살다가 쓸쓸하게 떠나는 분들이 심심찮게 뉴스로 보도가 되곤 하지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완벽하진 않을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그곳은 파라다이스가 분명할 거니까요.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을 못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겠어요. 우린 지성인이니까요.



눈사람
 
 
 밤사이 눈이 펑펑 내렸다
 밤새 조용히 내렸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눈이 왔는지 알지 못했다
 눈사람은 섬뜩한 오한을 느끼며 눈자락을 끌어당기며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이 서서히 녹고 있을 때 
 눈사람은 발가락부터 썩고 있었다
 독거란 어쩌면 고독을 즐겼다는 말
 혼자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몸서리쳤을 시간이 
 머리와 하체에 둥글게 뭉쳤다
 월세가 밀리지 않았다면 눈의 퇴적물로 남을 뻔한 고독
 추위에 착상된 주검이 들것에 실려 나올 때
 빚만 가득했던 삶의 청구서도 문드러졌다

눈사람의 채무 변제 방식은 간단명료하다

스스로 녹으면서 흔적을 지우는 것
 가래로 눈을 밀며 길을 터주던 주인은 혀를 차는 것으로 
 밀린 월세를 정산했다
 첫눈 치고는 꽤 많이 내리는 눈이 수군댔지만
 눈사람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봄까지 갔으면 눈사람은 청정하였으므로
 내장까지 보여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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