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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선용 Nov 24. 2021

일기예보가 다 맞는 건 아니었어

詩詩한 일기

살다 보면 이런저런 질병을 맞이하게 돼요. 병을 얻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치질로 한동안 고생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을 찾은 적 있어요. 내 삶은 다른 사람보다 등락이 좀 큰 편인듯 싶어요. 한때 사업을 하면서 으스대기도 했지만,  IMF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어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지만, 막일을 하다 보면 은근히 천대하거나 괄시를 당하는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아니할 말로 도둑질 빼고 별별 직업을 다 해 봤기 때문이에요. 발레파킹, 일용 노무자, 퀵서비스, 등등 손꼽아 부족할 만큼 다양하게 경험했어요. 그렇게 용을 쓰다가 생긴 병인지 모르겠지만, 치질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아래 시는 그런 막다른 길에 서서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같이 경험하면서 쓴 시에요. 탄광에 가면 막장이라고 있잖아요. 최악의 직업 중 하나죠.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일이 생겨요. 잘 다니던 직장을 부득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그런 것 같아요. 그걸 명퇴라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절대 실망이나 좌절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막장이라고 느낄 때 치질을 도려내 듯 낙담을 도려내야 해요. 말처럼 쉽진 않겠지요? 그러나 힘을 빼면 가능해요.  어린아이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크게 다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해요.  성인은 두려움 때문에 발버둥을 쳐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크게 다쳐요. 하지만, 아주 어린아이는 떨어지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거죠. 군에서 높은 곳을 올라가는 유격훈련을 할 때 얼차려를 심하게 주는 이유가, 혹시 모를 추락에 대비해서라고 해요. 힘을 다 빼는 거죠. 그런 것처럼 막장이라고 생각 들면 그땐 오히려 호흡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레 늪에서 빠져나오는 건 시간문제예요.




막장을 도려내다


     

막장을 사는 사람의 엉덩이는 연탄불처럼 뜨겁다

학문을 발음하니 항문,

괄약근에 힘이 들어갈 때

차 지붕에 싸놓은 새똥이 마침표 같아서

또는 추락의 기호 같아서

밀고 미루던 퇴직이 하혈로 터졌다

곪아 터진 세월이 얼마인가

마침내 들이댄 칼에

막장은 동백꽃 만발하다가

눈 뜨고 툭,

밥줄 떨어지고 말았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가장이 이렇던가

바닥을 기면서 읍소한 막장의 길

학문이 항문 같아서

갈고 닦아도 어느 순간 똥이 되는 것을,

막장이 컴컴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자

새살 돋은 항문은 곧 단호해질 테니

그때는 단숨에 배설하게 될 테니

더는 피 보는 일이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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