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일기
예전에 비해 장례문화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꽃상여를 메고 상여꾼들의 곡소리를 내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물던 옛이야기가 되고 만 것 같아요. 지금은 화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입장이라 수목장 같은 자연장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고 오래전에는 풍장이라는 관습도 있었다죠. 초분이라고도 한다는 데요. 시체를 지상이나 나무 위, 큰 바위 같은 데 자연 유기하여 시신이 소멸되도록 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의 도서지방에서 마마에 걸려 죽은 아이를 풍장 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해요.
식물 중에는 산 채로 충장을 치르는 민들레가 있죠. 잠깐 동안 왔다가 가는 봄, 담벼락 밑 민들레를 뚫어져라 쳐다본 적 있어요. 오늘도, 내일도, 몇 날 며칠을 그 민들레를 바라보았죠. 자연과학적으로는 씨를 날리는 것이니, 생존을 위한 번식이에요. 그렇게 본다면 희망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시인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얘기해야만 해요. 시에서는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하죠. 그래서 담벼락 밑 민들레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게죠.
죽음이란 단어만 생각하면 두려움부터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죽음은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노랫말에도 있듯이 백 년도 못 살 거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간다고 하죠. 만약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살 수만 있다면 오늘은 성공한 날일 거예요.
에코다잉*
민들레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피었다가 지는 죽음의 향이 너무 강해서
묵념을,
그래,
때가 되면 가는 거지
오래 살면 추한 것을 너무 많이 볼지도 몰라
민들레가 알아들었는지
뼛가루 뿌리며 홀가분하게 날아간다.
* 무덤이 없는 친환경 장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