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샵사 한 장, 잡지 한 권 들이면서?’
울컥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어서. 덕질도, 제비 생활도 누가 시켜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두 마음이 충돌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냥 맘 편히 덕질하면 안 돼?’
‘그냥 좀 편히 생활하면 안 돼?’
‘남들은 잘만 사고 버리는데……!’
삐뽀삐뽀 사이렌이 울렸다. 단순한 억울함을 넘어서는 음침한 울분. 내가 가장 경계하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서 제 처지를 비관하는 무의미한 피해의식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오케이, 그만! 딱 거기까지!
나는 눈을 딱 감고 생각의 스위치를 내렸다.
삐뽀삐뽀 사이렌이 울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생각을 멈출 것. 이것은 내가 3X년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정한 몇 안 되는 절대규칙 중 하나다. 너무 많은 생각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은 나를 좀먹을 뿐이라는 걸 숱하게 겪었다. 좀먹은 마음은 쉽게 무너지고 어렵게 회복된다.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지금은 일단 할 수 있는 덕질을 하자.’
픽 싱거운 웃음이 났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이것도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지향하면서 몸에 밴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방금까지 나를 실컷 고민하게 한 것도, 결국 내 멘탈을 붙들어 맨 것도 제비 자아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래, 어덕행덕 아니겠어!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해야지! 덕심이 가장 끓어올랐던 콘텐츠를 다시 보기로 했다. 최애가 활동하는 그룹이 데뷔하기까지 걸어온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이미 본 내용인데도 똑같은 부분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역시 이 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원하는 꿈을 다 이뤘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덕심을 충전하고 덕계를 열어 스케줄을 훑었다. 최애가, 차애가, 같은 그룹 멤버들이 출연한 방송들 정보가 아무 일 없었다는 양 시야를 채웠다. 나는 타임라인에 흘러든 온갖 예고편을 재생하며 그중 ‘무엇을 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아, 나 콘텐츠 덕질도 꽤 가려서 하네?’
최애가 나온다면 용안을 보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시청할 법하건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제비 생활을 오래 하면서 차마 보지 못하게 된 종류의 콘텐츠가 있어서다.
이를테면 수족관이라든가 동물원을 방문해서 쇼를 관람하거나 체험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겉보기에는 동물의 능력에 감탄하고 동물을 귀여워하는 내용 같지만 기실 동물권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을 대상화하여 소비하기만 하고 끝나는 부류의 방송은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제비’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합친 단어다. 이야기의 흐름상 제로웨이스트와 반소비주의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했는데,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진 방향은 사실 비건이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비거니즘을 공부하다 보니 동물이 처한 환경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 저절로 지구 환경에까지 마음을 쓰게 됐다.
아차차, 지금 갑자기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콘텐츠 덕질 얘기하다 말고 동물권이니 비건이니 환경이니 당최 무슨 소리인가 싶은 사람도 아마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쯤에서 비건과 관련하여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비건은 완전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 오늘의 덕질 일본어 **
콘텐츠 コンテンツ(콘텐츠)
예고편 予告編( よこくへん 요코쿠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バラエティ番組(バラエティばんぐみ 바라에티-반구미)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하자(어덕행덕).
どうせヲタクするなら楽しくやろう。
(도-세 오타쿠스루나라 타노시쿠야로-.)
떡밥이 너무 많아서 행복해요!
供給量が多すぎて幸せです!
(쿄-큐-료-가 오오스기테 시아와세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