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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도 인생 친구를 보내주세요

by 노르키

나는 수줍은 10대 여자아이였다.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 심심하다는 마음보단 부끄럽단 자괴감이 더 컸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인데 학교에선 혼자 놀면 이상해 보였으니까. 척하면 착! 마음에 딱 맞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몇몇 되지 않았다. ‘왜 나는 마음 놓고 같이 깔깔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없을까?’ 그걸 내 탓이라 돌리며 열렬히 괴로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교실에 몇 십 명뿐이다. 그 사이에서 영혼의 단짝을 찾아내는 게 더 희귀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고 1 때였다. 우리 반엔 다가가기 어려운 여자애가 있었다. 키가 작고 덩치가 좋고 머리를 짧게 자른 당찬 여자애였다. 그 애는 “난 혼자가 편해.”라며 점심시간엔 혼자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엔 혼자 책을 읽었다. 솔직히 그 애가 용감하고 대단해 보였지만 나도 그렇게 살 자신은 없었다. 무리 지어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을까 내심 두려웠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철로를 따라 걸으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제게도 인생 친구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목련꽃나무 아래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도 이내 쓸쓸해졌다. 왜 나는 애들이 새로 샀다는 패딩이나 가방이나 핸드폰에 관심이 안 가는 걸까? 드라마도 잘생긴 아이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까? 좋아하는 게 비슷해야 찬찬히 말문도 트고 웃고 떠들며 친구가 될 텐데.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관심 없는 것들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빠가 차에서 틀어놓던 옛날 팝송. 이를테면 비틀스, 존 바에즈, 다이애나 로스처럼 낯선 이름들. 또는 기묘한 권법들이 등장하는 무협지들. 만화 삼국지, 재밌는 책들, 도서관에서 끓여주는 즉석 라면, 산책, 별 보기, 친구랑 그네 타기 등등.

대학생이 되자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수많은 사이에서 결국은 함께 있으면 든든하고 편안한 친구들 대여섯을 발견했다. 재밌게 읽은 책 얘기, 영화, 음악, 날씨, 드라마, 오늘 먹은 점심 얘기.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습관을 조금씩 길러나갔다. 그리고 스물다섯에 학교에서 발견한 인생 친구와 지금도 거의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다.


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너는 말이야. 남들이랑 조금 안 맞거든. 라디오 주파수처럼, 남들이랑 주파수가 조금 안 맞는다는 얘기야. 그런데 그래도 완전히 괜찮아. 남한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남하고 똑같아지려고 하지도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 그대로 밀어붙여야 성공한다. 알겠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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