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잘하고 있나요?" 물을 때마다 아빠가 내게 해주는 말
“지 술잔 지가 받아 먹는 거다.”
내가 “저 잘하고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아빠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모두 자기 몫의 술잔이 있다. 적게 먹든 많이 먹든 천천히든 빠르게 먹든, 다 자기 좋을 대로 팔자대로 하면 문제없다는 뜻이다.
“아빠, 저 어떻게 하면 돼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그렇게 물을 때면, 아빠는 내게 “자기 술잔에 따라진 술은 자기가 먹는 거지.”라고 말하셨다.
네 알아서 하면 돼, 이런 뜻인 것 같다.
“저 잘하고 있나요?”
“그런 걸 묻는다면 못하고 있는 거야. 잘하고 있는 사람은 바빠서 그런 것 물어볼 시간이 없어. “
언뜻 매정해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힘든 날엔 그 말이 위로가 된다. 아빠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조언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켜볼 뿐이다. 겁먹지 말고 알아서 결정하면 큰 문제없다면서.
어제 저녁, 시어머니는 남들보다 늦게 할머니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손주 나이가 서너 살이라면서. 예전이었다면 그런 말을 들을 때 많이 신경 쓰였을 것 같다. 내가 빨리 임신해드려야 하나...? 어서 할머니가 되시도록 도와드려야 할까? 하지만 그때 아빠의 ‘자기 술잔론’이 다시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내가 만들어드려야 할 의무는 내겐 없다. 그러니까 빨리 할머니가 되거나 늦게 할머니가 되는 것은 시어머니의 몫. 내가 엄마가 되고 싶을 때 되는 것은 나의 몫이며 나의 술잔이다. 남을 위해 내 술잔을 걷어차고, 다른 사람 술잔 기울이는 모습을 흉내 내며 살 수는 없다.
한편 우리 엄마는 아직 할머니라 불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아직 할머니는 좀 그래. 언제 내 나이가 이렇게 됐어. 이름 따서 쑥할미라고 불러줘.”
불리고 싶은 호칭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엄마도, 자기 술잔에 엄마만의 술을 채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