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태리 Sep 24. 2023

파워 J와 유연하게 걷기

서울둘레길 8코스(구파발역-북한산생태공원)

하늘이 높아지고, 산이 가까이 보인다. 걷기 좋은 가을이 왔다. 갱년기로 깊게 못 잔다. 수면의 깊이를 더 깊게 하려고 다시 걷자 했자.


걷기 전 오늘 코스 보니, 도착점 근처에 지하철이 없다. 예상외 버스비 지출을 꺼리는 화섭 씨다. 누나가 내준다고 설득했다. 화섭 씨는 mbti에서 계획형(J) 다. J들이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높다 한다. 그런데, 계획대로 인생은 되지 않는다. J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야 덜 불안하다. 나도 J인데, 파워 J 화섭 씨와 다니려니 유연성이 늘어난다.


집을 나설 땐 서늘했는데, 걷다 보니 뙤약볕이다. 모자가 그늘이 그립다. 그래도 어쩌랴. 적응해서 걸어야지.


오르막이 나오면 화섭 씨는 갑자기 속도를 높인다. 난 천천히 꾸준히 가는데, 스타일이 달라 화섭 씨는 저만치 내달려 시야에 안 보인다. 그래도 먼저 가서 앉아 기다려준다.


어쩔 땐 너무 빨리 내달리다 갈림길에서 표지를 못 보고 엉뚱하게 가버린다. 그럼 나는 화섭 씨를 불러 길을 고쳐준다.


이제 보니 스피드가 약한 나를 동생이 끌어주고, 길을 놓치는 동생을 내가 보완해 준다. 이만하면 좋은 팀워크다.



서울둘레길 스탬프 두 개 모았다. 마무리는 시원한 막국수다. 다 먹고, 화섭 씨는 내가 매달 내기로 약속한 보험료 낼 날짜가 왔다고 일러준다. 며칠 전 성인 발달장애인 이야기를 읽었다. 취직했는데 사람들을 좋아한 한 친구는 질 나쁜 동료를 만나, 성매매나 술 먹자는 꼬임에 빠져 돈을 날리기도 했다고. 그러고 보면 본인 예상외 지출을 절대 싫어하고, 사람에게 덜 관심 있는 동생은 적어도 돈을 날리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버스비며 보험비도 얄짤없이 청구하는 막냇동생은 자신을 잘 보호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집에 와 뜨거운 욕조목욕을 하니 혈액순환이 되며 오랜만에 노곤해진다. 건강한 가을느낌이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