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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Dec 03. 2023

우린 아직 젊기에

서울둘레길(성북생태교육원 ~ 왕실묘역길)

겨울이다. 겨울 등산은 옷을 겹쳐입는다 해서 세겹을 입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친구들이랑 한라산에 가기로 해 장만한 바람막이까지 입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서울둘레길 스탬프 찍는 종이가 없다. 등산복을 입은채로 한바탕 찾다, 엄마가 어딜 보라고 알려주신다. 고 자리에 있는 종이. 찾아준 수수료를 내라는 엄마.용돈 받으시는 방법도 기발하시다. 기분좋게 용돈드리고, 화섭씨랑 둘레길로 출발했다.


날이 풀려 햇살을 받으며 걷다보니, 슬슬 더워진다. 이솝 우화 보면 바람보다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다지. 어느덧 한겹만 입고 걷고 있다.둘레길에서 만난 노년분들은 자켓을 입고 다니시는데 우리만 한겹 차림이다. 우린 아직 젊구나.


어느덧 점심시간. 화계사 앞 국수집에 들린다. 화섭씨는 공인인증서 갱신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뜬금없는 주제에 그게 왜 중요하냐고 물어보니 본인 인터넷뱅킹할때 필요하단다. 핸드폰 메모장에 빽빽이 적은 숫자를 보여준다. 날짜별 공인인증서 갱신전 남은 날짜수와 갱신후 내년까지 남은 날짜수래나. 무슨 엑셀처럼 빼곡히 계산해두었다. 이걸 왜 계산했냐고 하니 인증서 갱신이 중요해 기억하고 싶었다고. 반복되는 숫자에 안정감을 느끼는 화섭씨인지라 계산하며 즐거웠다면 되었다.인간엑셀이구나.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둘레길 시작. 몸은 따뜻해져 다시 한겹차림이 되었다. 중간에 먼지 털이기가 나온다.그 앞에 서서 나오는 바람으로 본인의 머리에 대고 윗옷을 들쳐 배 안에 바람을 넣는 화섭씨. 더워서 그렇단다. 기계 망가뜨리는것도 아닌데, 다른 용도로 쓰면 어쩔쏘냐. 키득대며 선풍기처럼 먼지털이기를 쓰는걸 찍었다.


겨울은 겨울인지라 걷다보니 따뜻한 커피가 그리웠다. 카페 가서 쉬었다가자고 제안했다. 좋다하는 화섭씨. 나만 제주도 가는게 미안해 나중에 비행기 타고 한라산 가자고 제안해봤다. 싫다고 고개를 젓는 화섭씨. 왜 안되냐고 하니, 잠은 꼭 자기방에서 쉬고  자야한단다. 멀리 가서 자는건 안된단다. 이럴땐 돌아가신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 변화를 싫어해 가구를 바꿔도 잠을 못 주무시던 아버지였다. 어쩌겠냐, 너의 소박한 행복을 존중해줄께. 당일치기로 가는 산만 가면 돼지.



이 코스는 나에게는 두번째다. 난 북한산 둘레길을 걸은적 있다. 근 4년만에 오는것 같다. 그사이 데크길이 많이 생겼다. 카페도 많이 생기고. 우이동에 새로 생긴 고급 리조트  파라스파라는 둘레길에 일정부분 산책코스를 공유했다. 그사이 둘레길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편해진 시설 누리자. 누리는 사람이 임자다.



출발할때 목표는 왕실묘역길 입구까지였다.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화섭씨는 목적지가 가까워 오자 빨리 달려갔다. 해보다 늦을까봐 마음이 급해져 "아까 카페 안 갔으면 빨리 왔잖아아~"라는 불평을 하며. 쉬었다가자 할땐 좋다할땐 언제고. 내가 못 쫒아 가겠다. 내속도대로 가니, 스템프통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수고한 스템프 두개, 오늘 숙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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