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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Feb 18. 2024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왕실묘역길 - 도봉산역

갱년기를 자연스럽게 겪고 있다. 야간 발열, 눈은 침침하고, 뒷목은 뻣뻣하고, 두통이 있다. 이럴수록 더 움직여야 한다.직장에서 재직 10년 되었다고 보너스를 줬다. 기념으로 등산스틱 샀다. 우리의 둘레길 여정도 업그레이드 되었다.


오늘 걷는 코스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시작이 편하다. 버스 한번만 타면 된다. 등산스틱이 친구가 되어준다.


산으로 들어서자 저멀리 내빼는 화섭씨. 이제는 가다가 날 기다려줄걸 아니까 마음이 편하다.점으로 화섭씨가 보이고 스틱을 쓰고 잘 걷는게 보인다. 나도 둘레길 걸으면서 두번 넘어졌는데 이제 의지처가 생겨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 둘다 나이가 드니 화장실을 자주 간다. 중간에 한옥도서관이 나온다. 우리 동네라 화장실이 어딨는지 알아 도서관 화장실 이용하니 편하다.



방학동 이 동네엔 오백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넌 그 세월을 어찌 견디고 사니..하면서 나무에게 말을 건다. 가지가 휘어져 지지대를 받치고 있지만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마음이 의지된다. 고목이 주는 위로가 있다.

갑자기 윤동주 서시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갑자기 눈물이 난다. 죽어가려고 늙어가는게 고단했다. 갱년기는 공짜로 주었던 젊음을 가차없이 가져간다. 누리고 있을땐 몰랐는데, 없어지니 서럽다. 체력, 빠른 두뇌회전 등 말이다.


한때 상실수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 그래, 통크게 젊음 까짓것 줘버리자. 젊음이 지나간 빈 공간에 새로움을 허용하기 위해. 요새 <서드 에이지,마흔 이후 30년> 읽고 있다. 20세기는 청년기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고령화로 중년과 노년의 시대라고 한다. 중년과 노년이 사회의 중심이 되니,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중년에는 이 몸에 맞는 재탄생이 필요한데, 스스로에게 실패의 기회를 줘야 한단다. 실패는 학습의 단계이므로 학습을 위해 실패를 허용해야 한다.


난 중년에 적응중이다. 그러니 조급해말고 받아들이자. 마음을 다독거리니 어느덧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무수골이다. 화섭씨가 화장실에 가고프다한다. 공용화장실 소개해주니 한참 있어도 안 나온다. 이름을 부르니, 아직 화장실에 있다한다. 조급한 내 맘을 달래고자 등산스틱 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당황했다는 화섭씨. 잘 처리하고 나왔다고 한다. 1.7키로만 가면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꼬셨다. 뒤에서 보니 두꺼운 바지가 보인다. 도착지가 도봉산 초입이라 등산바지 파는 곳이 많다. 봄 바지 사줘야겠다고 마음 먹고 걸었다.


드디어 등산바지 파는곳에 도착! 친절한 주인 아저씨가 응대해준다. 화섭씨는 본인 바지사이즈도 잘 모르는데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38 맞을거 같다고 하신다. 하나를 골라 탈의실에서 입어보라 하니 화섭씨는 이 상황이 불편한지 탈의실 안에서 당첨자명단을 읇는다. 내가 불편해져 왜 바지 갈아입는데 말하지? 라고 말해도 여전히 혼잣말하는 화섭씨. 갑자기 아무도 태클 안거는데 나만 오버한다는걸 알았다. 화섭씨는 본인 방식대로 살고 있는데, 내가 그 방식에 편견이 있다. 그래 하고 싶은대로 말해.


탈의실 밖에 나온 화섭씨는 바지를 잘 입었다.다리를 구부려 보라니까 잘한다. 편하고 가벼운 바지 잘 샀다.



염증이 있는 화섭씨 위한 도토리묵 먹고 도봉산역에 있는 스탬프 찍었다. 근데 아까 바지 사느라 도봉탐방지원센터 앞 스탬프를 놓쳤다는걸 알았다. 도보 20분을 다시 돌아 걸어 가야한다. 이 말을 하니 누나----- 하고 짜증 내는 화섭씨. 그래, 좀더 참을성있는 내가 찍을께. 모든 약하고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고 죽어가는것을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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