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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May 23. 2018

우리의 마지막 접점

지난 뒤 알 수 있는 마음

@momo


"나도 널 좋아해."


심장이 지릿했다. 곧,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시선을 맞추었다.


너를 좋아한 지는 2년. 그 사이 너를 본 건 두 번이었다. 너와 눈맞춤을 하는 동안, 마음은 더욱 세차게 요동쳤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너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모텔에 들어서며 사 온 맥주캔은 뜯지도 못했다. 우리는 둘 다 살짝 취한 상태였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네가 왔다. 무릎을 감싼 내 팔을 풀었다. 너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를 파고들어왔다. 너의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1년 전, 간신히 뱉은 내 고백을 너는 조심스럽게 거절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특별한 감정을 품은 채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었다. 매일 카톡과 전화를 하면서 조금씩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1년 만에 본 너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동안 철저히 지켜온 친구라는 이름은 2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함부로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되어 있었다. 꼭 봉인돼 있던 마음에 빗장이 풀렸다. 꽁꽁 숨겨둔 마음이 비죽 튀어나왔다. 좋아한다는 말을 다시 꺼내자 눈가가 흐려졌다. 너는 내 손을 꼭 쥔 채 다른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무서웠다. 행여나 뭘 잘못 말해서, 잘못 행동해서 아침이 오면 너를 더는 보지 못할까 봐. 친구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더는 네게 연락할 수 없을까 봐. 그래서 차편이 끊긴 시간이었지만 집에 가겠다고 했다. 너는 가지 말라고 했다. 손을 더 세게 그러잡았다. "내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아?" 조심스러웠다. 너는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번 실랑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꼭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서로의 손가락을 힘껏 감싸 안았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편하게 자라며 너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다시 소파로 갔다. 푹신한 소파 위로 네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사이에는 얇은 유리 벽이 있었다. 알딸딸하던 기분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우리가 가까이 살았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우리의 마음이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

"아니. 넌 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간간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긴 침묵은 잠시 숨을 멈췄다. 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지금 이 시간이 너와 나의 관계를 한층 더 짙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21살의 크리스마스 새벽, 창밖으로는 눈이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내 이름을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와의 마지막이었다.  며칠 뒤, 너는 군대를 갔고, 나는 미국 대학 생활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물리적 거리와 군대라는 장벽은 조금씩 우리 마음에 틈을 새겼다. 우리 사이는 변한 것이 없었다. 누구도 그날 밤 일은 말하지 않았다. 전화와 편지로 연락이 오갔지만, 서로의 일상에서 모르는 지점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너는 가끔 내게 전화를 했다. 네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게 설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너는 제대 후 미국으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일이 가까워질수록 너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너와 나의 목소리가 섞이지 않는 시간의 간격만큼 너는, 내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인연은 지킨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네가 생각나면 그런 생각을 한다. 너를 잃을 두려움을 딛고 네게 좀 더 다가갔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어차피 잃을 인연이었다면 좀 더 용기 내볼걸,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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