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생존과 불투명 사이 속 침묵의 시간

by 식기난게

완성되지 않은 순간들 그때 그 나무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꼴라보하우스 도산점 프로젝트 당시, 봐두었던 땅에서 오래 묵은 무화과나무를 꼭 사용하고 싶었다. 농장주인도 하 도 오래되어 뿌리가 어느 정도 깊이로 있을지 드러내기까지는 감도 못 잡을 거다라는 소리를 듣고도 완성되는 그림만 상상하며 욕심을 부렸다.

다행히 무화과나무가 자리 잡았던 하단부에는 시멘바닥이 있어 깊게는 뿌리를 못 내렸으나 얕게 그리고 넓게 자란 시간을 주장이라도 하듯 오래된 뿌리는 가지화가 되어 있었다. 지상부 가지와 두께가 맞먹을 정도였는데, 나무의 지상부 형태와 다를 게 없는 몸통과 다름없는 구조물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나무를 10으로 봤을 때 수분과 양분을 먹는 흡수근은 지금 기억으로도 1도 채 안 되는 상태였다. 이는 나무를 드러내는 순간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수있 을지 없을지 불확실한 상태를 의미했다. 작업 과정 자체가 '생존'과

'불투명' 사이의 긴장이었다.


아주 미미한 어린 뿌리의 활착을 돕기 위해 뿌리 활착에 좋은 흙과 피트모스의 원재료를 배합해 보습성과 통기성의 밸런스를 맞춰줬 고, 식재작업을 한 이후 시원하게 물을 급수한 뒤 오랜 침묵의 시간까지 장기간 관수 없이 관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에 기대하며 꼴라보하우스 현장에 빈가지의 무 화과나무를 설치했다. 다행히도 꼴라보하우스 광장은 사방에 이 있어 1-2시간만 직사광선이 있고, 여름철 고온기에도 토양의 과도 한 건조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반년 이상의 순을 내지 못하 는 무화과나무는 죽은 나무로 간주되어 해당 공간 안에서는 더 이 상 나무로써의 생명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단부 가지는 말라갖지 만 중심부의 촉촉한 가지를 보고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지나가 는 시간 속에서 더 이상의 설득력을 잃어갔다.


반년 이상의 긴 침묵의 시간. 결국 무화과나무는 식기난게 본점 앞에 자리하여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가지 근처에 한 가지 에서 잎 눈들이 오동통해진 것을 발견했다. '살았다!' '되었다!' 실제로 두 달 가까이 물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는 나무의 생리적 적응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본다. 무화과나무는 뿌리를 잘려나 간 후 회복의 과정에서 외형적으로는 죽은 듯 보였으나, 내부 적은 로는 보이지 않는 생존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의 무화과나무는 단순히 살아난 개체가 아니라, 뿌리의 단절과 긴 침묵을 견딘 뒤 완전히 회복된 존재로 식기난게한테는 엄청 난 메시지를 가져다주었다. 무화과나무의 여정은 우리 브랜드가 가진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투명했던 시간이 우리의 손길과 기다림을 통해 확실한 생명으로 바뀌었고, 침묵 속에서도 끝내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냈다.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는, 단순히 나무를 옮기고 관리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불확실한 가능성을 감내하며, 그것을 온전한 삶과 아름다움으로 전환시키는 믿음을 가진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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