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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l 25. 2019

글을 쓸까, 청소를 할까?  

어제저녁 있었던 일이다. 

8월부터 다른 회사로 출근이 확정된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와서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며, 주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원래' 우리 집의 가사 분담은 음식 준비와 빨래가 내 담당, 설거지 및 청소는 남편 담당이다. 

특히 설거지와 청소는 남편의 기준이 좀 까다로운 편이라 내가 하면 성에 안차 해서, 

결혼 초기부터 남편이 쭉 해오던 일이다. 


어제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아이들 병원도 다녀와야 했고, 

책 반납기한이 다가와 도서관에도 다녀와야 해서 아침부터 아이들이 하원 하는 시간까지 한시도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당연히 아침식사를 한 그릇도 개수대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사실이 생각나자 남편이 구시렁댈 것이 뻔해서 조금 찔렸으나 어차피 식기세척기 돌릴 거니까-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남편이 짜증을 낸다. 


"아니, 도대체 애들 어린이집 가면 집에서 뭐해? 

청소도 좀 하고, 설거지도 제 때 좀 하고, 집안 정리도 좀 하고.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고."


순간 욱 한 내가 맞받아친다.


"오늘 애들 둘 다 챙겨서 병원 갔다가 어린이집 보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비 오는데 버스 타고 다녀오느라 평소보다 시간도 훨씬 더 걸렸단 말이야. 도서관도 다녀와야 했고. 

그리고, 원래 나 일할 때도 설거지랑 청소는 자기 담당 아니야? 

내가 휴직했다고 해서 모든 집안일을 다 나한테 하란 말이야? 

그럼 난 회사 갈래. 다음 달에 바로 복직해버릴 거야!"


물론,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쉬고 있으니까 집안일의 부담을 내가 더 한다고 해서 전혀 억울하지는 않다. 

도의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오늘은 여러 스케줄이 있었고 게다가 요즘 기존 회사를 마무리하는 시기라 

남편 본인도 여유 있었으면서 나한테만 타박을 하니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남편이 말한 '쓸데없는 짓' 에는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포함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내는 이 시간이 웃을 일도 많고 정말 행복한 순간이지만, 

그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일목요연하게 '글자'로 남겨놓고 싶은 욕구가 내게는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여간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쓸지 글감을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머릿속에서 만든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가 저렇게 적었다가 백스페이스 키를 수시로 눌러가며 고쳐 쓰는 동안 시계는 째깍째깍 잘도 간다. 

뛰어난 글도 아니고, 수필이라고 하기도 뭣한 일기 같은 글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혼자서는 잘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매주 목요일마다 마감을 정해놓고 함께 쓰는 모임에 벌써 6개월째 참여하고 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목요일 마감 기한이 기다려질 때도 있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어제처럼 남편과 다투기라도 한 날에는 정말, 이런 건 쓸 데 없는 짓일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 시간에 집안일을 하는 게 더 나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글쓰기를 한 주 쉴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주도 쉰다면 이대로 루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뭐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 

그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 재빨리 청소부터 먼저 하자. 

원래 내 일이 아니라고 해도 어제 남편과의 일도 있고 하니 

빠르게 집안일 하나를 먼저 해치우면 더 글도 잘 써질 거야 - 생각하며 정말로 30분 동안 청소를 했다.

청소기로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고, 신경 쓰였던 폴더 매트 사이사이도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내고 창틀과 선반 위도 닦는다. 연이은 비에 집안 습도가 90%를 넘어가니 금세 몸은 땀으로 젖는다.

청소를 마치고 샤워를 한 뒤 캡슐커피 2개를 내려 진한 아이스 라테를 한잔 마신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 사진을 한 장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자, 봐봐 됐지? 나 이제 글 써도 되지?'라고 덧붙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당당해진 기분이다. 


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은 또 금방 흘러있다.

아직 점심도 못 먹었는데, 곧 하원 시간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청소도 했고, 이번 주 글도 쓸 수 있었다.

간단한 점심을 차려먹고, 설거지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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