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
‘다방’이라니, 나는 처음부터 그 말을 여러번 곱씹어야했다. 지금의 신랑, 그러니까 그 때의 남자친구였던 건형씨가 생일을 맞아 나에게 준 축하 편지에는, ‘다방’이라는 곳에서 편지를 쓴다고 했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 곳은 ‘극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나에게 먼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단어는, 분명 ‘다방’이었다. 경기도 북쪽의 미군부대가 많았던 외곽도시 출신인 나에게 ‘다방’이라는 말은, 붉은 빛으로 외부로는 쉽사리 그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단어였다. 그래서 ‘다방’이며 ‘극장’인 곳에서 펀지를 쓴다는 그의 말은 낯설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어리석은 나에게, ‘생각’이니 ‘산책’이니 하는 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방 친구들과 같이 있다며 맨 처음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던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여자친구를 다방 친구들에게 소개하겠다며 전화를 걸었다는 남자 친구도 이상했고, 성소수자인 여자친구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왁자지껄 모여든 얼굴 없는 그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제 한 번 놀러오라고, 빨리 보고 싶다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나도 그러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그 날 처음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눈 ‘다방’ 친구들과의 인사는, 솔직히 편안하고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신랑과 함께 처음 다방을 찾아가던 날, 손으로 쓴 ‘생각 다방 산책 극장’이라는 푯말은 할머니의 투박한 손짓 같았다. 손인데 손이 아닌 것 같은 촉감, 보드랍지도 따스하지도 않은데 자꾸 끌어 쥐고 싶은 마음. 쿰쿰한 오래된 집의 냄새, 국경을 여러 번 넘어온 것 같은 문양과 일렁임들. 주말이었고 맑은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실로 쓰는 마루에 앉아, 나는 시선을 막은 구청 건물을 보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답답하다고 투덜거렸을 것 같은데, 푸른 바다 앞에 앉은 것처럼 어쩐지 상쾌했다. 가볍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은, 한 데 모여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일들에 몰두해 있었고, 그 어색함들이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미 난 ‘다방’이라는 말도, ‘극장’이라는 말도 잊어버린 채였다. 또 하나의 어색한 일부로 거실 끝에 앉아, 나는 자연스럽게 ‘다방’의 풍경과 어우러졌다. 버려진 집을 개조해 백수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고 하는 주인장 히요 씨의 말이 너무도 투명해서, 나는 그 말의 대답을 찾지 못해 조금 머뭇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눴으면서도, 나는 이 공간의 정체를 찾지 못해 난감했었다. 다방이라고 부르기에도 다방이 아니었고, 극장이라고 부르기에도 극장이 아니었으며, 놀이터라고 하기에도 내가 아는 놀이터는 분명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날, 낡은 주택 건물을 나서며, 나는 신랑에게 여전히 많은 것들을 묻고 또 물었다. ‘다방’에 들어서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음들이었다. 신랑은 여전히 내 궁금증들을 해소할만한 답변들을 내놓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날 내가 만난 그 공간과 사람들을, 내 지인들에게 소개할 때 난해하고 힘겨웠었다. 신랑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공간을 무어라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 공간을 가리키는 한 마디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란 걸 그 때에는 알지 못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새로운 세계였고, 새로운 언어였다.
그 후로 ‘다방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그들을 계속 보았고, 그 때마다 새로운 ‘다방 친구들’이 나타났다. 부산 사람도 있었고, 서울 사람도 있었고, 외국 사람도 있었고, 고양이들도 있었다. 책 모임을 했고, 콘서트도 했고, 파티같은 것도 하고, 김치나 음식들도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이전에 왔던 ‘다방 친구들’이 다시 보이기도 했고, 전혀 새로운 ‘다방 친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신랑은 그 곳에서 작은 전시를 했고, 나도 내 책으로 작은 북쇼를 했다. 새로운 곳으로 다방이 이사를 하던 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다방 친구들’이 다시 나타나 모두 이사를 도왔고, 새로운 집에서 다시 또 책모임을 하고, 파티를 하고, 노래를 듣고, 노래를 하기도 했다. 차를 마시고, 밥도 먹고, 영화 같은 풍경과, 영화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곳을 ‘다방’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극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집 같았고, 작업실 같았고, 친구네 같았고, 남의 집 같기도 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그래서 더욱 모호한 말들을 경계하는 습성이 있다. 또한 어쩌면 나 스스로 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더 명쾌한 것들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지도 모른다. 의미가 어긋나버린(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어긋나지도 않은) ‘다방’이라는 말 앞에서, 내가 알고있는 것과 어긋나버린(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어긋나지도 않은) ‘극장’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꽤 오래도록 머뭇거렸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내 안에서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 그 두 단어를 이따금 만지작거린다. 모든 경계를 뛰어 넘은 냄새, 어색하고 낯설어서 자연스러운 친구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는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다방’이라는 말과 ‘극장’이라는 말을 조물락거린다. 내 손안에서, 어떤 모양이 되어도 상관없다. 다시 또 딱딱하게 굳거나, 귀퉁이가 부서져 나가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여전히 그 이름들에 명확한 의미를 말하지 못하지만, 나는 ‘다방’이 있었다는 걸 안다. 우리들의 삶에 짧은 영화를 보여준 ‘극장’이있었다는 걸 안다. 앞으로 다시는 그 때의 ‘다방’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그토록 구체적인 의미나 이름도 없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
왜 우리들의 생은 ‘이름’으로 가득할까?
그냥 ‘꽃’으로 부르거나,
‘세상’이라고 불리워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내 삶에, 잊지 못할 ‘다방’이 있었고, ‘극장’도 있었다.
정말, 행복했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