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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Feb 16. 2022

코시국에 향한 하와이

여행의 시작은 PCR 검사로부터

'여행 준비를 해야 되는데..'

'짐을 싸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수십, 수백 번 스쳐가고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니 출발 하루 전날이었다.


꽤나 오래전부터 여행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매일매일 답답한 마스크 안에서 직장인으로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며 시간이 흘러간 것뿐이었다.

머릿속에 생각은 많았지만 직장인 나부랭이는 긴 휴가 전 업무 정리정돈을 해놓고 가야 욕을 덜 먹을 테니 몸은 기계적으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짐은 밤에 싸기로 하고... 업무 시작하기 전에 PCR 검사부터 받으러 가자.'


이른 시간 동네 보건소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확진자가 7 천명대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검사에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조금 늘어선 줄의 꼬리가 되어 잠깐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껏 단 한 번도 PCR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인생 최초 PCR 검사를 해외여행용으로 받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보다 뇌까지 쑤시는 느낌이라는 왕면봉은 어떤 느낌일지 갑작스러운 불안감도 몰려왔다.

접수 데스크에서 본인 확인 후에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여진 체취병과 면봉을 받은 뒤 스트레이트로 검체 채취가 진행됐고, 이 과정은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끝났다. 상상만큼 깊게 찔린 코 속 깊은 곳 점막이 자극되어 눈이 얼큰해지더니 재채기가 에추! 하고 나와버렸다.


코를 훌쩍거리며 귀가한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업무를 계속했다. 일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약간의 기대감과 설렘으로 마음이 약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프로답게 머리와 마음을 분리해서 잘 다스리자라고 스스로를 절제시켰다.

근데 갑자기 엉뚱한, 그리고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어쩌지?'

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마음고생, 눈치싸움은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루고 미뤄둔 짐을 쌀 필요가 없어서 좋을 것도 같다. 그럼 사용하지 못한 휴가일수에는 뭘 하지?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다행히도 끝이 나지 않는 업무 덕분에 여행 전날임에도 딴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문자가 띵동 하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근데.... 이게 이렇게 두근거릴 일인가?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는 일은 어느 때고 낯설고 당황스럽고 떨린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란다. 이제 공식적으로 나는 공항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그 땅으로 떠날 수 있다! 야호.


여행 짐은 싸고 싸도 언제나 뭔가를 놓친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다. 꿈꾸기로는 언젠가 한 번쯤은 정말 가볍고 자유로운 몸으로 캐리어 없이, 혹은 캐리어를 완전히 비우고 어딘가로 떠나보고 싶었다. 아무리 빼려고 해 봐도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은 자꾸만 눈에 뜨이고,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려해야 하는 변수는 너무도 많은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많지만 돈이 없고, 나이가 들면 돈은 생겨도 시간이 없거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오롯이 여행할 수 없다는데, 지금의 나는 어정쩡하게도 시간도 돈도 적당히(?) 부족해서 결정 장애에 걸려버린 것 같다. 여행 캐리어에 많은 아이템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은 짜게 주어진 시간과 돈을 함부로 낭비하기 싫은 마지막 자존심과 고집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버리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행자로서 부족함을 느끼기엔 내가 또 적당히 나이 들어 버린 걸까. 이럴 땐 차라리 소유욕이 없었던 20대 초반의 내가 부럽고 그리울 따름이다. 나는 진정 캐리어를 비우고 떠나는 여행 같은 건 불가능한 걸까?

'뭣하면 가서 물건을 좀 버리지 뭐.'

배가 불러 지퍼가 빡빡하게 잠기는 캐리어를 밀고 대문을 나섰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일상을 일시 정지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 들어설 때 특히 이런 기분은 부드럽게 강해진다. 전광판에 뜨는 목적지와 출발 시간. 이것만 봐도 마음이 내려놔지는 건 나만 경험하는 걸까?


공항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코로나 초기에 비해서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 이전에 문을 완전히 닫았던 면세점도 많이 열려 있었고 게이트 별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일정 정도로 보였다. 만차 버스처럼 사람들을 빡빡하게 채워 출발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과는 다르게 모두가 자리를 잡고 누워갈  있다는  갑자기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눕코노미라는 단어가 생겼을까.


하와이의 시차는 하루 하고도 5시간 정도가 빠르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 오늘 살아낸 날짜의 하루를 한번  살러가는 것이다. 시간을 하루 벌었다가, 돌아올  하루를 내어주어야 한다. 절대적인 시간의 속박 속에서 잠깐 마법을 부리듯 꼼수를 쓰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숨도 눈을 붙이지 않고, 인천을 출발한  상태 그대로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내려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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