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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Jul 08. 2024

안 뻔한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

중요한건 오롯한 진짜 나

여행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멀고 낯선 여행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여행지에서 시간이 없으면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기도 어렵고 나만의 인상과 감상을 남기기도 힘들다. 유명한 곳을 다녀오고도 그 도시에 대해 안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돈도 많으면 좋다. 돈을 들이면 좀 더 편안하게 이동할 수도 있고 시간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한 두 가지 필수 요소는 너무 당연하게도 시간과 돈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꼽는 건 생각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일. 그 틀이란 일종의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인데, ‘여기에서는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의 부재가 필수적이다. 다른 이들의 괜스런 투두 리스트나 필수 방문 랜드마크 등에 얽매이다 보면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지만 결국 시간을 낭비하거나 피곤해진채로 하루가 마무리되어 공허하다. 이 원칙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내 취향에 대한 확실한 기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없으면 오히려 어렵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여행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는 경우 다른 것들에 의해 끌려다니기 쉽다. 타인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나만의 확실한 기준을 만들고 고수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앎,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과 감각에 대한 믿음이 기반되어야 한다.


좀 더 실천적인 차원에서 뻔하지 않은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서 여행의 컨셉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하게 될 여행의 주제나 소재를 키워드로 정의내려 보는 것이다. 나는 이번 뉴욕 여행의 키워드를  'refreshing', 'motivation'로 꼽아봤다. 개인적으로 이번 학기 통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영어 기피증(?) 공포증(?) 같은 게 생겨버린 듯해서 남모를 고민이 생겼었기에, 실제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에 와서 자유로운 컨텍스트에서 발화도 해보고, 연설문의 단골 메뉴인 UN 본부나 세계 경제의 중심인 월스트릿에 가서 영감도 얻어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인상 깊게 봤던 여행 에세이집 중 하나는 프랑스의 '초콜렛'을 키워드로 한 것도 있었고, 누군가는 '서점', '그릇' 같은 개인 관심사를 꼽을 수도 있겠다. 여행의 포커스를 좁혀 깊이 있는 경험을 하는 데에 집중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경험한 것, 그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건 사후적인 차원의 여행 관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짧은 메모나 끄적임, 음성 메모, 혹은 그림 등 어떤 결과물이라도 괜찮다. 사진, 영상보다는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이 드는 행위이면 더 좋다. 내가 여행을 글로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한번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번의 생각, 그리고 그 이상의 사유를 하게 된다. 여행의 겹을 덧씌우는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글로 남긴 여행 기록은 이후에 볼 때 더욱 깊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이 된다는 게 만족스럽다.


뉴욕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몇 가지 준비했던 연재 개요가 있었는데, 결국 뉴욕 여행이 일주일이나 훌쩍 지나고 나서야 다음 글을 쓰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 낯설고 얼떨떨한 시간을 지나 시차도 점차 맞아가고 있는 시점에야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 자신부터 이 여행에서 오롯한 나의 시선으로 뉴욕을 바라보고 차곡차곡 잘 정리할 수 있길, 그리고 돌아갈 때쯤에는 안 뻔한 나의 여행이었다고 브런치에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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