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순 없지만 머물고 싶은 도시
얼마 동안 여행을 해야 뉴욕 여행을 잘한 걸까?
모든 여행이 그런듯 하지만 특히 뉴욕 여행에 알맞은 시간이라는 건 계산기처럼 정확하게 결과값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후루룩 대표적인 명소들만 봐도 그 자체로 멋지고 흥미로운 도시지만, 파고 파면 얼마든지 더 매력적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네이티브 미국인을 포함해서 국적이 미국인인 한국인들까지, 현지에서 생활 중인 지인이 여럿 있어서인지 뉴욕은 여행지라는 느낌보다는 생활 공간처럼 느껴졌다. 대도시 답게, 하루 중 어느 때고 다양한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었고, 항상 같은 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비슷한 루트로 이동하는 듯한 사람들도 점차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면 친절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또 서로 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듯한 느낌도 낯선듯 익숙한 기분이 들게했다. 어쩌면 뉴욕은 서울이랑 많이 닮아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전 세계의 메트로폴리탄 시티는 이런 공통점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크게 실감한 뉴욕의 매력을 꼽으라면, 나는 공간과 이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색깔이라고 말할 것 같다.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가 가진 색감이 사진 결과물에는 큰 영향을 미치는데, 뉴욕은 도시의 색감 뿐 아니라 뉴욕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색깔이 선명하게 인식되는 곳이었다. 무심코 카메라 앵글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올 때면, 그리고 허락을 받지 못하고 셔터 조작 한번으로 그들이 피사체가 되버릴 때, 그 사진들마저도 영화 속 한 장면, 화보 속 한 장면이 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다양한 피부색 머리색을 가진 인종, 개성 넘치는 머리스타일과 패션, 얼굴 표정까지도, 뉴욕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그 자체로 당당하고 빛나 보였다.
그래서인지 마주쳤던 뉴욕의 사람들이 많이 떠오른다. 이솝 매장에서 결정장애로 한참 고민하는 나에게 이런 저런 다양한 제품들을 소개해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게 응대해줬던 남자 직원, 버스 터미널 안 팁을 바라면서 무거운 문을 항상 잡아주고 있던 흑인 노인(그 문은 정말 무거웠다. 한번도 현금 잔돈이 없어 팁을 주지 못했다.), 재즈바에서 연주를 마치고 수줍게 사진을 함께 찍었던 이스라엘 출신 피아니스트의 손길, 구글 오피스에 용기를 내어 견학갔을 때 만난- 어쩌면 업무로 연결되어 있었던 사람들의 실물, UN 본사의 200명 정도 되는 한국인 직원 중 한국어 투어를 담당한다던 마르고 똑똑해 보였던 여성 큐레이터 분, 정말 멀리서부터 문을 잡고 웃으며 뒤에 오는 나를 위해 기다려주던 작은 백인 소녀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열정이 넘쳐 보였고, 또 예술과 문화에 진지했고, 낯선 다른 이들을 존중해줄 줄 아는 느낌이었다. 물론 뉴욕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도시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사람들을 그렇게 빚어내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뉴요커들의 자부심이 더 많은 사람들을 뉴욕으로 이끌고 좋은 가치들을 발휘하도록 기름을 부어주는 느낌.
좋은 점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현실적으로 단점도 명확히 보인다. 서울의 미친 집값만큼이나 뉴욕에서 주거 및 생활에 드는 돈도 만만치가 않다는 것은 유명하다. 당연히 먹고 자고 돌아다니는 데 드는 여행 비용도 평균적으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젊음의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비유하자면, 내가 가질 순 없지만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미칠듯이 매력적인 데이트 상대 같달까.
분명히 뉴욕여행은 예상과 너무나 크게 달라서 경이로움을 느끼거나, 새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 곳은 몇번을 더 와도 늘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자주 추억하게 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Thank you NY,
See you l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