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희귀병인 걸 알게 되는 날에

by 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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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던 어느 날,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었는데, 너무 거센 바람에 걸어가거나 유모차를 타고 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가까운 거리니, 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조차도 바람이 너무 강해 걱정됐다. 차를 타고 아이를 서둘러 태우고 가던 중, 신호에 걸렸다. 그 순간, 아이는 창밖을 보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와 나뭇잎이 춤을 춰요!”


어른의 시선으로는 바람이 너무 거세고, 마치 불편하고 난감한 상황처럼 느껴졌지만, 아이의 눈에는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춤추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이 순간, 나는 아이에게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배웠다. 아이는 불편한 상황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편견 없는 순수한 시선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때로는 너무 많은 것에 얽매여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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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단풍이 왜 빨간색인 줄 알아요?”


이렇게 아이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답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나도 정답을 말해주기보다는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엄마는 잘 모르겠네. 주원이가 알려줄래?”


아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혀지며, 자신만의 답을 이렇게 말했다.

“햇님이 뽀뽀해서 빨개졌대요!”


그것은 동요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용한 것이다. 아이의 순수한 표현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에게 있어 세상은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수함을 지켜주고, 아이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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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5구 식판에 아이의 식사를 차려준다. 그날은 멸치 반찬을 준 날이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아이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국 칸에 멸치 반찬을 넣고 휘휘 섞어 버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긴 바닷속이에요, 상어가 헤엄치고 있어요.”


어이없으면서도, 그 모습에 나는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역국과 멸치 반찬이 섞여 바닷속 같긴 했다. 아이의 상상력은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나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저 장난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력은 어떤 현실도 다채롭게 바꾸고,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가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과 창의력을 배우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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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아이는 무지개를 검은색으로 그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간색 위에 주황색을 덧칠하고, 그 위에 노란색을, 초록색에서 보라색까지 한 번에 덧칠하다 보니 결국 완성된 무지개는 검은색이 되어버린다. 그냥 ‘아이의 그림=검은색’이라고 해석하면 걱정이 될 법도 하겠지만, 내가 그 과정까지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걱정될 게 없었다. 아이가 고른 색깔과 그 순서를 보면, 그 자체로 또 다른 무지개가 탄생한 셈이다. ‘무지개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가 만들어낸 방식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되었다. 아이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의력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무지개가 꼭 정해진 색만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이처럼 아이들은 우리에게 상상력의 한계를 허물고,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이가 나중에 인생의 어려운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되어도, 그 열린 마음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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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아이의 순수한 질문과 상상력,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나도 그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작은 손길 하나하나, 그들이 만든 세계에서 우리는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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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희귀병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날 너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삶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너는 바람 속 나뭇잎이 춤춘다고 말하던 아이였고, 햇님이 뽀뽀해서 단풍이 빨개졌다고 믿던 아이였다. 세상을 너만의 방식으로 바라보던 너라면, 진실 앞에서도 끝내 너 자신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그날이 오더라도, 네 세계가 단 하나의 병명으로 좁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기준, 타인의 시선에 삶을 내어주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언제나 너만의 무지개를 그려왔다. 비록 그 무지개가 검은색으로 완성되었더라도, 그건 세상을 너답게 사랑한 흔적이었다.


그러니, 잊지 말아라. 네 방식은 언제나 옳았고, 그건 어떤 진단도 대신 설명할 수 없는 너의 이야기였음을.


“네가 아픈 날에도, 세상은 너의 무지개로 물들기를.”

“그날에도 넌 여전히 춤추는 나뭇잎을 볼 수 있는 아이일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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