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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등교사 윤수정 Sep 08. 2024

겪어봐야 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아들 방으로 향했다. 별 이상이 없다. 다행이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새벽부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아들 모습이 심상치 않아 근처 병원에 갔더니 열도 나고 맹장이 의심된다면 응급실로 가보라고 했다. 설마! 했지만 계속 아픈 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들을 보니 덜컥 걱정이 되었다. 가다가 맹장이 터지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응급실에서 받아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우리를 받아주었다. 환자복으로 탈의한 아들 녀석을 보니 더 아픈 아이처럼 보인다. 응급실 의사가 아이 배 이곳저곳을 눌러보고 살피며 묻는다. "이쪽이 아프니? 여기가 아프니? 어디가 더 아프니?" 아이는 개미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겨우 알아듣게 대답을 했다. 몇 번의 문진 후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정확히 맹장인지는 CT 촬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다만 검사 후 수술을 이 병원에서 할 수 있을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검사하시겠어요?"


아이는 계속 신음 소리를 내며 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검사하겠다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몇 가지 사전 동의에 관련된 설명도 들었다. 그 말로만 듣던 의료 대란을 내가 직접 겪을 줄이야! 정말 맹장이라면, 여기서 수술이 안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병원에서도 안 되는 수술을 어느 병원에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피검사, 엑스레이 촬영, 링거 주사, CT 촬영.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몇 가지 검사들이 진행되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맹장이 확실했다. 아이는 링커 약 처지 때문인지 처음보다는 나아 보이긴 했지만 아팠다 안 아팠다를 반복했다. 


"엄마, 나 쉬어야 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 아! 월요일이 학교 개교기념일인데. 이번 주 축구해야 하는데......"


"하필 월요일이 개교기념일이냐. 너 속상하기도 하겠다. 그런데 요즘 병원 진료 못 받고 난리도 아닌데 여기 응급실에서 우리 받아 준 것 만이라도 다행이야. 너 뉴스 못 봤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아들 녀석이랑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때였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아까 문진 했던 의사가 아닌 젊은 의사가 나를 찾았다. "어머님, 걱정하셨죠? 다행히 맹장은 아닌 것 같아요. 여기가 맹장인데 깨끗합니다. " CT 사진을 보여주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부풀 대로 부풀어 곧 터지기 직전이었던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두형아, 진짜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 소리가 튀어나왔다. 

"엄마, 오버하지마." 아들 녀석이 바로 내 말을 단 칼에 잘라버렸다. 

"아들, 살아있네." 


잠깐이었지만 아찔했던 대소동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맹장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뉴스에서 접한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아픈 사람과 그 가족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겪어봐야 안다. 어서 빨리 이 어려운 의료 상황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아티스트 데이트, #응급실행, #다행히 장염,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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