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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희랍어시간>

by 초등교사 윤수정

나우학교 한평 책방, 11월 도서는 한강 작가님의 <희랍어시간>이다.

희랍어 시간, 저자한강, 출판문학동네, 발매2011.11.10.


노벨문학상 작가의 위엄 답게 아름다운 문체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한 편의 드라마 장면처럼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문장들 속에서 감탄했다. 반면 한 번만 읽고는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책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타다니, 환호와 함께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번역된 책이 아닌 우리 한글로 쓰인 도서가 원서라니. 기쁘다 못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많은 책들이 연일 언론 보도에 오르내렸다. 그중에서 한 권의 책에 눈길이 갔다. 바로 <희랍어시간> 이 책은 작가 한강만의 아름다운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다른 어떤 책보다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이 책의 주요 내용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사춘기 시절 함묵증과 같은 증상을 겪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여자는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이혼하게 된다. 아이의 양육권도 남편에게 빼앗긴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취약하다는 이유로. 얼마 전 친정어머니도 죽음과 함께 그녀 곁을 떠났다. 혼자가 된 그녀는 다시 오래전 겪었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어릴 적 불어를 배우며 다시 말할 수 있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한 가닥 희망을 걸고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한 남자는 어릴 적 온 가족이 독일로 이민을 간다. 남자는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질병으로 어른이 되면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란다. 낯선 독일에서 그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과 희랍어이다. 수학은 동양권 아이들이라며 어느 정도 잘할 수 있는 과목이지만 희랍어만은 그에게 특별했다.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희랍어였다. 그는 자신의 눈을 진료해 주던 의사의 딸 -어머니가 인도인이어서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 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며 어느 날 불쑥 한 마디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와의 이별의 계기가 된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P.47



이후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그녀에게 말은 일종의 그녀를 향한 타인의 강요이고 독단이며 폭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P. 48


남자는 가족을 뒤로 한 채 홀로 한국에 귀국한다. 사설 아카데미의 희랍어 강사로 일한다. 그곳에서 그는 말을 잃은 여자, 그녀에게 희랍어를 가르친다. 그는 언젠가는 실명하게 될 자신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그녀가 쓴 희랍어 시를 계기로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그녀가 말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과거의 자신이 범했던 첫사랑의 성급함과 어리석음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P. 66


둘은 계단에 갇힌 새를 계기로 서로가 처한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란 무엇인가? 나를 표현하고 또 누군가를 알 수 있게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수단이라 말할 수 있다. 반면 때로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언어는 내가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절망하게 하는 매우 위압적인 존재요, 폭력적인 존재도 될 수 있다.


때로는 어떤 말보다 침묵이 위로가 되는 때도 있다. 말이 아닌 따뜻한 눈빛, 표정, 미소가 서로의 언어를 뛰어넘어 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올 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국어를 구사하는 주인공 남자와 여동생의 관계에서 그의 말이 여동생에게 더는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또한 이 같은 언어의 한계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빨갛게 언 손이 시리다고 말하는 여섯 살 여자아이의 얼굴로, 아무것도 알 수 없어졌다는 듯 너는 나를 우두머니 건너다보았지. 그때 생각했어. 네 목소리론 네 얼굴을 만져줄 수 없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무엇이 너를 만져줄까. 아마 나는 절망을 느꼈던 것 같아. P.80


https://naver.me/xExhOoXv


나에게 희랍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희랍어라는 매개를 통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이야기한다. 남자에게 희랍어는 무엇이었을까? 또 여자에게 희랍어는 어떤 존재였을까? 각자의 어려움은 달랐지만 이미 죽어버린 언어인 희랍어 만은 그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제시하는 한 가닥 빛줄기 같은 것이었다. 결국 희랍어를 통해 둘의 만남이 이어졌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희랍어는 새벽 기상이다. 새벽에 깨어 한없는 자유와 기쁨을 느낀다. 또 내가 함께 하는 공동체, 나우학교이다. 보이지 않는 이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교감하며 소통하는 모든 행위가 나에게는 희망이고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우학교 독서토론 한 평 책방


학교에서도 다양한 아이들을 마주한다. 모두 각자의 희랍어가 있다. 수학에 자신감이 있어 자신을 스스로 수학 왕이라며 자랑하는 아이도 있다. 온통 머릿속에 축구밖에 없는 아이도 떠오른다. 축구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아이에게 축구는 희망 그 자체이다. 축구는 그 아이의 희랍어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조금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져 보이는 그 아이는 자신은 외발뛰기를 잘 한다면 한 발로 열심히 줄넘기를 뛰어 보이며 자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누군가의 눈에는 별 볼일 없는 외발뛰기가 그 아이에게는 그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희랍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 별 대수롭지 않게 마지못해 칭찬 한마디를 겨우 해 주고는 말았다.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타인에 대해, 나는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한다.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는가? 스스로 묻게 한다.


외발뛰기를 잘한다며 의기양양하던 그 아이에게 듬뿍 칭찬해 주지 못했던 그 일이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다.


우와, 우리 재영이 정말 잘한다. 외발로 줄넘기하는 것, 쉽지 않은데 재영이가 연습을 많이 했나 보다. 멋있다. 재영아.


보르헤스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보르헤스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을지라도 타인과 나 사이에는 칼이 있다. 심지어 다른 언어를 쓴다면 그 칼은 더욱 서로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 구분 지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너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그 무엇인가는 존재한다. 언어를 초월하는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 관심, 배려가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여자를 표현한 몇 개의 문장이 있다. 마치 이 글을 쓴 한강 작가를 연상케 하는.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폐활량의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른 체구였지만, 자신의 부피를 더 작게 만들기 위해 어깨와 등을 웅크렸다. 그녀는 유머를 이해했고 퍽 낙천적인 미소를 가졌지만, 웃음소리만은 낮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P.51


나는 그녀와의 반대였던 것 같다. 어디서든 목소리를 크게 내려고 했고 나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 때로는 누군가의 위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때도 있었다. 너무나 큰 목소리로 혹여 누군가에게 목소리만으로도 위압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참고 영상

https://youtu.be/wtNM-TssVrs?si=SLqrk-0R9X0cYQ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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