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대해 여러 말을 덧붙이고 싶진 않다. 다만, 딱 하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명작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비극적인 작품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래에 대한 엄청한 지식과 잡담 때문에서 서사의 흐름이 방해받고 쉽게 읽기 어렵다는 평가도 오해인 것이다.
먼저,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소개한 표 4 소갯글을 읽어보자.
우주와 삶의 신비에 대한 끝없는 매혹,
그 비의를 찾으려는 탐구와 해석의 열망으로 가득 찬 대서사시
『리어왕』, 『폭풍의 언덕』에 이은 영문학 3대 비극
탐색과 추구, 투쟁과 파멸이 얽힌 전율적인 모험소설이자
열정적인 상상력으로 우주와 자연, 인간의 숙명을 노래한 위대한 비극
허먼 멜빌의 위대한 작품 <모비 딕>
정말 멋있는 소갯글이라서 책을 덥석 집어들 젊은이들이 무척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위의 소갯글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불만이 있다. 이 명작에 대한 국내의 리뷰나 서평, 전문가의 해설 동영상 등을 자주 살펴보았으나, 한결같이 지나치게 진지한 측면만 언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이 작품이 지닌 진정한 매력을 제대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내가 『모비 딕』을 읽게 된 계기는, 동인 모임 <오독>(= 오 분 동안의 고독)에서 누군가 이 책을 읽고 토론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너무 두꺼운 책이라서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글 잘 쓰는 후배가 강력하게 추천하니 읽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모두 열심히 읽었다. 진지하게 사는 나도 열심히 읽었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진중했고 어느 모로 봐도 심오했고 철학적이었다. 웅장한 서사시(敍事詩)에 나올만한 문장이 자주 등장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좀 과장된 문체였지만 바다라는 배경에 잘 어울려 보였다. 허먼 멜빌은 중세의 작품을 읽고 근대에 작가 활동을 한 사람이구나. 그러니 짧고 명료하고 헤밍웨이 식으로 냉정한 단문 중심으로 쓴다는 건 그 시대와는 맞지 않았겠구나. 뭐,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50쪽을 좀 넘어가더니, 느닷없이 웃기기 시작했다. 정말 웃겼다. 그러다가 다시 웅장하고 매우 진지한 목소리의 묘사와 멋있는 문장과 성찰이 뒤죽박죽 나오더니, 다시 또 느닷없이 웃겼다. 다른 문우들의 평은 이랬다.
“아, 정말, 이 작가는 말발! 말발이 정말 장난이 아니어요!”
그 뒤로 나는 출판사의 문학 행사 모임 같은 곳에 가서 『모비 딕』이 빛나는 유머 소설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다. 하루는 꽤 알려진 어느 작가가 정말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머 소설이라고요? 모비딕이?”
그 뒤로 나는 『모비 딕』을 유머 소설이라고 광고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감동했다는 사람의 리뷰나 영상을 접할 때마다, 솔직히 좀 의아하고 아쉬웠다. 대부분, 선장 에이허브와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의 대결 스토리에 한정해서 이 작품을 논했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고래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지루하고 읽기 어렵지만.”
이런 덧붙임을 들을 때마다 조금 웃음이 나오곤 했다. 읽긴 읽어도 제대로 읽은 건지 의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담하건대, 『모비 딕』을 읽는 진정한 재미는 바로 그 지루하다고 평가되는 그 지점, 바로 그곳 여기저기에 놓여있다고!
광기 어린 에이허브와 거대한 고래의 싸움에만 주목하려고 하면, 이 책의 10분의 1 정도만 골라서 읽어도 된다. 딱 그 정도 분량만 그런 파멸적인 대결 이야기가 나온다. 나머지 9할은 뭐냐고? 나머지 9할은, 그런 상징적 대결과는 솔직히 전혀 무관한, 그냥 고래에 대한 이런저런 광범위한 잡담이다. 정말 잡담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고래에 대한 잡담이 엄청나게 웃긴다!
우리나라 비평가들이 이 점을 지적한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간혹 살짝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해학적인 문체가 있다는 평가였다. 그 <해학>이라는 한 마디 언급으로 만족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극적인 요소>에만 유독 눈길을 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 지나치게 유머 부문만 밝히는 취향인가? 하며 내 독서법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매한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이라는 걸 읽게 되었다. 마흔 권 정도의 고전을 소개하는 글을 모은 책이었다. 그런데 글 가운데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으악! 이건 완전히 내 견해와 일치하네!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 (2012, 을유문화사)에서 발췌 (p273~274)
모든 바다 괴물을 능가하는 바다 괴물, 무게 10톤, 길이는 거의 20미터, 아기 엉덩이처럼 하얗고, 하얀 만큼 폭발적인 향유고래, 여기에 더해 정신 나간 늙은 선원, 나무 의족을 달고 구약성서에서 걸어 나온 듯한 남자가 이 바다(와 그 영혼)의 악마를 쫓고, 선원 중에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전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소설로 여겨져 마땅한 이 작품은 종종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책,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책으로 꼽히곤 한다. 그러나 자아, 여기로 오시라, 내가 비밀을 알려줄 테니까. 여러분이 알기로, 고래잡이에 관한 온갖 따분한 것이 담긴 괴물 같은 소설이라는 『모비 딕』은 재미있다. 시대를 초월해 가장 재미있는 책 가운데 하나이며, 정말 재미있다. 여러분은 내가 콧방귀 뀌며 반어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 말은 사실 그대로다. 『모비 딕』은 왁자지껄 웃음판이다. 사람들은 그저 고래잡이에 관한 것들을 넘겨 버리지 못해서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모비 딕』이 재미있다? 나의 고등학교 선생님은 이 위대한 주술사를 그렇게 광고하지 않았다. 사실, 이 소설의 주요 주제가 인간 대 자연인가, 인간 대 초자연인가, 아니면 인간 대 인간 자신인가를 판단하려고 끙끙대던 기억밖에 없다(물론 이 세 가지 다이며, 그 이상이지만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그러나 20년 후,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모든 것이 이해됐다. 그렇다, 이 책의 유머는 고래잡이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보일 법한 5백 페이지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진짜로 거기 있고, 거기 있도록 의도되었고, 일단 여러분이 멜빌의 유머 감각을 이해하기만 하면 『모비 딕』은 그야말로 고전이자 미국인이 쓴 최고의 소설이 된다.
책 속에 갇힌 고래를 구하기 위해서는 화자인 이슈메일이 머리에 든 게 많은 척하는 불손한 사람이며, 풋내기 선원과 사회, 종교, 동료 선원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걸고넘어지면서 끝없이 농담을 지껄인다는 것만 알면 된다. 선원으로선 형편없는 그는 까마귀 둥지에서 망을 보다가 잠들고, 항상 허둥대다가 배 밖으로 떨어질 뻔하고, 대체로 고래사냥에 방해가 되고, 주변의 바다 거품이나 폭풍을 눈여겨보기보다는 항상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세르반테스를 흉내 내어 말하듯이 “실컷 웃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기 드물게 좋은 일이다.
...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사태에는 우주 전체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난이나 농담으로 여겨지는 야릇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 농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전 소설에 대한 해설과 안내가 돋보인다!
고래에 대한 유머 잡담 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꽤 많지만 몇 가지만 아래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소설에서는 고래의 분류 문제를 논한다. 린네의 『자연의 체계』 같은 분류에 대해 거창하게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느닷없이 고래의 분류 기준을 고래의 크기로 삼는다. 분류법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고래의 크기를 다시 책의 판형 크기에 비유한다. 그러더니 (1) 2 절판 고래, (2) 8 절판 고래, (3) 12 절판 고래로 분류한다. 그러곤 2 절판 고래의 전형으로 향유고래, 8 절판 고래의 전형으로는 솔잎고래, 12 절판 고래의 전형으로는 돌고래를 제시한다.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대목에서 소리 내어 웃어도 된다. 재미있다. 고래를 생물학적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책의 판형으로 분류하다니! 이런 대목을 매우 진지하게 읽는 독자를 상상하면 그것도 아주 웃긴다. 허먼 멜빌의 유머 스타일이 좀 그렇긴 하다. 장엄한 문체로 웅장한 우주와 대자연을 논한다. 그래서 독자는 그 와중에 곳곳에서 스며드는 웃기는 대목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멜빌의 엄숙한 문장으로 통해 사실상 논하는 주제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래의 목은 어디에서부터 인가?
향유고래의 경우 3/1 지점인지 3/2 지점인지? 사실상 목이란 게 있기나 한가?
생각해 보라. 이런 걸 거대 담론처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긴다.
허먼 멜빌에 따르면 향유고래의 정면은 온통 머리통이고 입은 턱 아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코는, 코 역시 전혀 없다고 서술한다. 그래서 고래 사냥하는 사냥꾼이 고래의 코를 잡고 비틀어서 모욕을 주고 싶어도 다행히 코가 없어서 모욕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독자인 나도 고래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보기 시작한다. 고래의 눈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한다. 양쪽 옆에 있으니까.
그럼, 고래의 눈은 정면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옆면을 바라보는가? 옆면을 바라본다면 그는 좌측과 우측의 광경을 동시에 보는 것인가? 문제적 탐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ㅎㅎㅎㅎㅎㅎㅎ
불쌍한 고래는 무수한 포경꾼들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흔히 고래의 등에는 숱한 작살이 꽂혀 있다. 여러 포경선의 포획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최후의 포경선이 고래를 잡으면, 그 고래의 소유권은 누가 가져야 하는가? 작살을 꽃은 모든 포경선이 공동 소유해야 하는가? 아니면 마지막 포경선의 것인가? 마지막 포경선이 고래를 차지한다면, 고래의 등에 꽂힌 수많은 작살이나 밧줄과 엉켜있는 배는 누구의 소유인가. 최종 포획자인가?
이거 별로 안 웃긴가? 고래를 생각하면 웃을 일이 아니지만, 그 당시 그 시절 이런 논쟁과 소송이 실제로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논쟁 자체가 웃긴다. 나만 웃긴가? 그렇다면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고래에 대한 잡담들은 너무 진지한 말투로 다뤄지고 있지만, 명백히 유머의 일종이라는 게 나와 잭 머니건의 공통된 의견이다. 잭 머니건이 마치 내 친구 같다. ㅎㅎ
심지어 광기에 사로잡힌 무시무시한 선장 에이허브조차 소설 후반부에서는 너무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코믹하다.
이따금 나오는 각주도 자세히 읽다 보면, 웃긴다. 굉장한 성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엉뚱한 이야기를 가져다 붙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멜빌식의 유머를 유머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진중하고 철학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독자는, 그런 독자는, 뭐 그런 독자도 아예 안 읽고 건너뛰는 독자보다는 훨씬 낫다. 비평가는? 비평가는 원래 진지해야 한다. 무게 있고 냉소적으로 해석해야만 했을 테니, 나름 고생했다. ㅎ
물론 『모비 딕』이 유머로만 점철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삶과 우주에 대한 커다란 상징과 비극적인 결말을 고려한다면, 이게 오로지 유머 소설이란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주장은 그냥 나의 유머일 뿐. 어쨌든 『모비 딕』의 유머는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