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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Oct 22. 2024

여름의 눈 (5)

단편소설

여름의 눈 (5)



  그 뒤로 초콜릿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돈이 급할 때마다 초콜릿을 판매할 수 있었다. 마약 단속반 형사들이 클럽에서 나를 연행해 가기도 했다. 강남 일대의 유흥가에서 정체 모를 최음제 초콜릿이 판매되고 있다는 제보가 경찰 귀에 들어간 탓이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친 형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초콜릿을 검사했으나 마약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 이상한 결과였으나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 당황한 경찰은 나를 풀어줘야만 했다. 


  경찰 조사를 마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이진은 더욱 초췌해졌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침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이진의 옆에 누웠다.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자 이진의 잇몸에서 송곳니가 슬그머니 뻗어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이진이 좋아하는 모모코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태양이 특히 눈 부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야. 손바닥으로 가리고 올려다봐. 여름이 조금 싫어졌으면 좋겠어. 지난여름에 이진이 내게 설명해 준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가 버렸다.           


  나는 클럽에서 유혹한 의사에게 초콜릿을 주고 혈액을 얻었다. 그러나 이진은 내가 가져온 피를 거부했다. 할 수 없이 억지로 이진의 입에다 피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진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인간의 혈액이 더는 효과가 없는 것인가? 이진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피를 마셔야 기운을 차릴 수 있냐고, 내가 기꺼이 원하는 피를 구해 주겠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이진은 창백한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외면당한 나는 화가 났다. 이내 다시 걱정되었다. 이진이 더 버티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요즘은 이진의 피를 마셔도 내성 탓인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활기가 사라진 몸에서 나온 피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효력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이전보다 한층 더 우울해졌다. 


  이진, 너는 도대체 뭐지? 


  이진은 침묵하기만 했다. 나는 이진을 흔들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얀 목에 입 맞추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내 눈에 핏발이 서고 내 입술이 붉어지고 내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진의 목에 다시 키스했다. 그리고… 기꺼이… 물었다. 이진의 눈에서 파란빛이 발산되고 입술 사이로 하얀 송곳니가 번쩍였다. 이내 이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래도 이진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이진이 풀려나면 내게 달려들거나 도망칠 게 분명했다. 이진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나는 가까운 귀금속 가게를 방문했다. 단아한 반지를 하나 구매했다. 이진의 피가 섞인 초콜릿을 판 돈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반지에 문자를 새겼다. 


  이진, 내 사랑.


  나는 이진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피가 더 필요하니까. 초콜릿이 필요하니까. 어쩌면 이진이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을지 몰라. 이진은 내가 함부로 대해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할 거야. 내가 조금 심하긴 했지. 그래도 나를 사랑할 거야. 나를 용서할 거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프러포즈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이진에게 돌아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진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이진의 몸에는 핏기가 돌지 않았다. 싸늘해져 있었다. 눈동자는 허공에 고정된 채였고 몸은 축 늘어졌다. 맥박도 뛰지 않았다. 피부도 온기 없이 냉랭했다. 죽음의 기운만 어려 있었다. 나는 반지를 던져버렸다. 화가 치밀었다. 슬픔이 밀려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나는 어떡하라고. 잠시 뒤에 이성을 되찾았다. 가장 시급한 일은 시체를 처리하는 거였다. 난감했다. 일단 이진의 손목에 감긴 수갑을 모두 풀었다. 발목의 밧줄도 풀었다. 이진의 목덜미에는 이빨 자국이 서너 개 남아 있었다. 내가 남긴 자국이 나를 향해 비웃고 있었다. 



(계속) 내일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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